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한화생명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상고심에서 “근로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조건의 존부와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11년 만에 자신들의 판단을 뒤집은 것으로, 가뜩이나 대내외 경영 환경 악화에 신음하는 기업들에는 날벼락과 다름없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2013년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소송에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거나 최저근무일수 등 조건이 있는 조건부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번에 ‘고정성’ 요건을 아예 폐기했다.

대법원 판결을 믿고 노사 합의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한 기업으로선 앞으로 줄소송에 시달리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인건비를 추가 부담하게 됐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 등의 산정 기준이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추가 부담액이 연간 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고정성 요건 자체가 사라져 이보다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판결의 혜택이 전체 임금근로자의 5.1%에 불과한 대기업 근로자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경총 분석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연봉 총액이 약 361만원 늘어나지만, 29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는 20만원에 그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병폐를 유발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심화할 게 뻔하다.

대법원도 심사숙고했겠지만 결국은 손바닥 뒤집듯 과거 판단을 바꿔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소급 적용에 제한을 두기는 했지만, 기업 현장에 초래할 극심한 혼란에 대해서도 고민했는지는 의문이다. 대법원은 ‘경영 성과급’의 평균임금 포함 여부, 원청이 하청과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지 등에 대한 판결도 줄줄이 앞두고 있다. 법리적 판단에 앞서 사회와 기업의 현실도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