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 탱크/사진=TASS
러시아 군 탱크/사진=TAS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3년 가까이 전쟁을 이어가면서 보유한 장갑차 상당수를 잃고 영화 촬영 소품으로 사용하던 구소련 시대 탱크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최대 영화 제작사인 모스필름 대표가 지난달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제작사가 보유하고 있던 1950년대 제작된 탱크 등 군용 차량 50여대를 러시아군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모스필름이 제공한 군용 차량은 제작사에서 영화 촬영 소품으로 수십년간 사용하던 것으로, 1960년대 당시 소련 국방부가 제작사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50년 넘게 전쟁터를 떠나있던 이 장갑차들이 수십 년 만에 러시아군의 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현재 러시아군이 겪고 있는 장갑차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석했다.

러시아는 2년 반 넘게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탱크 3600여대를 포함해 군용 차량 총 1만1000여대를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러시아의 전쟁 전 기준 15년간 생산량에 맞먹는 수치라는 게 서방 당국자와 분석가들의 설명이다.

분석가들은 러시아군이 현재 보유한 남은 탱크는 2600여대로 추정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보유한 장갑차가 곧 완전히 동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서방의 갖은 제재를 견뎌 온 러시아가 이번에도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WSJ은 러시아군이 탱크 희생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전술을 바꾸고 수십년간 창고 속에 있던 구소련 시절의 장비를 꺼내 정비하는가 하면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등 손실을 메우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봤다.

최근 러시아군이 전쟁터에 동원하고 있는 구소련 시대의 탱크들은 과거 소련이 붕괴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대량 생산할 것들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은 1960∼19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다시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주간 정비를 거쳐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러시아가 앞으로 최소 2년 더 전쟁을 할 수 있는 만큼의 탱크를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최전선에서는 탱크 대신 소규모 보병들을 가장 먼저 투입하고 탱크는 나무로 위장해 조심스럽게 내보내는 식으로 전술 변화도 이뤄지고 있다고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 당국자들은 전했다. 이는 탱크 등 장갑차 대신 병사를 더 많이 희생시키는 전술이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군 전사자 수 역시 전쟁 초기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가을 하루 평균 러시아군 전사자 추정치는 1000여명으로, 대부분 하루 평균 300명 미만이었던 2022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집계도 나왔다.

카네기재단 선임 연구원 마이클 코프먼은 WSJ에 러시아가 전쟁 기간을 늘리기 위해 "적응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가 가진 장비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만한 시간은 없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