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자의 기준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4 한국 부자(富者)보고서’를 어제 내놨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서 부자는 46만1000명, 전체 인구의 0.9% 정도다. KB가 부자로 꼽은 기준은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개인’이다. 세부적으론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은 자산가,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은 고자산가, 300억원 이상은 초고자산가로 분류했다. 금융계는 대체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로 본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은행은 금융자산 100억원 이상 또는 총자산 300억원 이상을 슈퍼리치로 칭한다. 은행과 증권사는 10억원 이상 고객에겐 세무 상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외국에서도 대개 미화 100만달러가 부자 기준이다. 백만장자라는 말이 아직 통하는 셈이다. 다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처럼 100만달러 이상 자산을 잣대로 삼는 곳과 시장조사업체 캡제미니처럼 100만달러 이상 투자 가능 금융자산을 기준으로 삼는 곳도 있다. 블룸버그는 미화 10억달러(약 1조4514억원) 이상 자산가들의 보유 주식 가치를 실시간 추적해 억만장자 지수를 내놓기도 한다.

조세 제도에선 부자 기준이 전혀 다르게 적용된다. 현재 부유세 개념이 적용되는 세제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등이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배당과 이자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웃도는 사람이다. 단순히 은행 예금만 있고 금리가 연 3%라고 치면, 6억6700만원의 예금이 있으면 대상이다. 종합부동산세는 12억원이 넘는 주택을 한 채 가지면 대상이다.

상속세는 자녀와 배우자가 있는 경우 상속재산이 10억원을 넘으면 대상이 된다. 서울에선 대상자가 15%에 이른다. 상속재산의 많은 몫을 차지하는 주택 값이 뛰었지만 제도는 25년간 그대로인 탓이다. 정부는 세율을 낮추고 공제를 높이는 방향의 상속세제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거대 야당 반대와 탄핵 여파로 무산됐다. 부자도 아닌데 부자세를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계속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