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는 반복되는가
1992년 4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군부를 앞세워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헌법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거대 야당에 의한 정부 견제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8년간 통치했으나 정적 탄압과 부패 등으로 몰락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2년 12월 7일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 시도에 맞서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의회 해산, 신헌법 채택 및 비상정부 수립을 발표했다. 그러나 쿠데타는 몇 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군부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쿠데타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취임한 지 1년 반도 안 돼 대통령직에 적합지 않음을 드러냈다. 다섯 번이나 내각을 교체하고 80여 명의 장관을 새로 임명했다. 정치적 경험 부족, 무능 외에 부패 혐의가 더해졌다. 결국 의회가 헌법상 ‘도덕적 무능’을 사유로 탄핵을 결정함으로써 대통령직에서 축출됐다. 페루에서는 2016년 이후 무려 여섯 명의 대통령이 사임, 자살하거나 탄핵당했는데 페루 국민은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탄식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시사하듯이 사람들은 역사 속 사건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1787년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와 르완다 집단살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 반복되는 경제위기 등 비극을 겪으며 역사의 순환적 현상으로 사건이 처음에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으로, 다음에는 피할 수도 있었을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사람과 시대적 배경이 다른 상황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는 없다. 미래의 사건은 과거의 결과이지 과거와 동일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패턴과 연관성을 찾는 인지편향 때문에 역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역사적 유추를 이용해 현재의 사건을 이해하려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실수다. 근저에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 탐욕, 헛된 영웅심, 증오, 광신, 야만성 등 쉽게 변하지 않는 본성이 인간을 비슷한 실수로 이끈다. 어떻게 해야 비극적 실수의 반복을 방지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결정적 역할은 개인이 사회에 존재하는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일련의 공식과 비공식 규칙 및 메커니즘인 제도에 의해 수행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제도는 민주주의가 안정적,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 발전을 이끈다. 비극적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권력자의 자의적 권력 남용과 헛된 야망을 합리적으로 견제하고 억제하기 위한 제도가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민주주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발전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이다. 의식이 어머니라면 제도는 자식이다.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역사의 퇴행을 막은 것도 시민의식이었다. 순환론적 역사관은 역사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한국도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시민의 민주의식이 벼려지고 성숙해졌다. 깨어 있는 시민이 있는 한 한국이 법치주의에 따라 민주주의를 조속히 회복할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다. 요컨대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제도 개혁과 제도 운용을 감시할 시민의식이 비극적 실수의 반복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