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창업자와 깊은 신뢰를 구축하고 후속투자를 진행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솔 기자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창업자와 깊은 신뢰를 구축하고 후속투자를 진행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솔 기자
“글로벌 탑티어 시장에 대한 동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향성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겁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투자시장에서 글로벌 동조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은 기술이 태동하는 곳으로, 지금도 더 많은 투자자가 미국으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올해 1500억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진행했다. 이 중 3분의 2가량은 신규 발굴 투자, 나머지 3분의 1은 기존에 투자한 기업에 대한 팔로우온 투자(후속 투자)다. 영역으로 보면 딥테크 투자가 50%에 달한다.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다. 노타, 라이너 같은 AI 기업들부터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 엑시나(메티스엑스), 방산 연관 소재기업인 한국정밀소재에도 돈을 넣었다.

내년에 회수 성과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도 많다. 박 대표는 “10곳이 넘는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라며 “조 단위 이상의 대어급 기업들의 회수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는 무신사, 세미파이브, 리브스메드 등이다.

그는 내년에도 AI 중심의 딥테크 투자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밸류체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AI 기업이라고 무차별적 투자가 진행되기보다는 확실하게 검증된 회사에 돈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드 투자를 받은 생성형 AI 기업들 중 시리즈A 투자에 성공하는 확률이 낮아지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회사는 투자시장에서 배제되는 ‘옥석 가리기’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무인화 트렌드에 따른 로봇산업, 고령화에 따른 헬스케어 영역도 유망 분야로 짚었다.

박 대표는 콘텐츠 기업들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글로벌에서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바로 콘텐츠라는 것이다. 그는 “K팝부터 게임, 웹툰, 드라마까지 확장된다면 굉장히 폭발력이 크다”며 “내년에도 K콘텐츠를 강력하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BTS 발굴 전 하이브에 일찌감치 투자해서 높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크래프톤 등 국내 게임사에 초기 투자해 많게는 17배가 넘는 투자금을 회수했다.

업계에서는 LB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성공 비결이 ‘선택과 집중’에 있다고 평가한다. 박 대표는 “기본적으로 팔로우온 투자를 지향하기 때문에 깊게 검토하고 신뢰를 쌓으면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며 “초기 투자한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했을 때 큰 투자 과실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세 차례에 걸쳐 200억원을 투자한 패션 플랫폼 기업 에이블리다. 1차 40억원, 2차 60억원, 3차 100억원을 지원하면서 에이블리 성장에 함께했다. 에이블리는 최근 중국 알리바바로부터 10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3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전문 기업인 스탠다드에너지에도 세 번에 걸쳐 215억원을 투자했다. 그는 “향후 한국의 배터리 산업을 바꿀 기업이라고 본다”고 했다.

박 대표는 내년에 글로벌에서 기회를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스타트업들도 해외로 나가야 성장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VC들도 해외와 교류를 늘리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외 사무소를 연 만큼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탐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1996년 설립된 LB인베스트먼트는 28년 동안 국내외 550여 개의 스타트업에 약 1조 8000억 원을 투자, 115개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상장시켰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