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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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 통행료가 비싸다며 관리권을 다시 가져가겠다고 언급하자 파나마가 강하게 반발했다. 1914년 미국의 자본과 인력으로 건설된 파나마 운하는 1977년 협약으로 운영권이 1999년 파나마 정부에 반환될 때까지 85년 이상 미국의 통제하에 운영됐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를 통해 "파나마 운하와 그 인접 지역은 파나마 국민의 독점적 재산"이라며 "국내 영토 주권은 결코 타협할 수 없고 단 1㎡도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파나마 제1야당인 민주혁명당(PRD)도 "파나마 운하는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되찾아 확장한 곳"이라고 성토했고, 파나마 국회 최대 의석(71석 중 21석)을 차지한 무소속 연합에서도 "우리 민족의 기억과 투쟁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과 애리조나 정치행사 연설을 통해 "파나마가 미국 군함과 상선에 부과하는 통항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매우 불공평하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파나마 운하를 지었고, 건설 과정에서 미국인 3만8000명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파나마 운하를 넘긴 데는 조건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관대한 증여에 따른 도덕적 법적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파나마 운하를 완전하고 조건 없이 돌려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파나마 운하가 잘못된 손에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이 지배하는 홍콩의 기업 CK허치슨이 파나마 운하 양쪽 끝에 있는 두 항구를 운영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바보같이 단돈 1달러에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넘긴 것은 오로지 파나마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지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당선인의 돌출 발언으로 파나마와 미국 관계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파나마 물리노 대통령은 콜롬비아·파나마 국경 지역 '다리엔 갭'을 통과하는 불법 이주민 행렬을 저지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등 전통적인 친미 국가다. 주변 중남미 국가들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파나마의 주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 화물선이 파나마운하 아구아클라라 수문을 통과하고 있다. / 사진=AP
한 화물선이 파나마운하 아구아클라라 수문을 통과하고 있다. / 사진=AP
파나마 영토 82㎞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주요 통항로다. 연간 최대 1만4000척의 선박이 통행하며,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3∼4%가 이곳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 운하청(ACP)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미국 선적 선박은 1억5706만톤(t)의 화물을 실어 나른 것으로 집계됐다. 압도적인 1위 규모로, 2위 중국(4504만t), 3위 일본(3373만t), 4위 한국(1966만t) 선적 물동량을 합한 것보다 1.5배 이상 많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