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수방사 1명 빼고 모두 육사…정보사령관·탱크부대장은 동기
해사 출신 합참의장·3사 출신 정보사 100여단장 등 비육사는 패싱
계엄군 일선 지휘관까지 대부분 육사…非육사는 배제된 듯
윤곽과 실체가 점차 드러나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계엄군 지휘관으로 출동했거나 계엄을 모의한 이들 대부분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부터 시작해 대령급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인원이 육사 출신이어서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이어야 할 육사의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23일 나온다.

군에 따르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관여한 주요 인원은 대부분 육사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김 전 장관이 1978년 입학하고 1982년 임관한 육사 38기이고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46기다.

해군사관학교 출신 김명수 합참의장은 계엄 사태에서 '패싱' 당했다.

합동참모본부는 계엄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 내 계엄과가 있어 계엄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육사 출신 박 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낙점을 받은 것이다.

국회에 병력을 보낸 육군 특수전사령부는 곽종근 사령관이 박 총장 1년 후배인 47기, 이상현 1공수여단장이 50기, 김정근 3공수여단장이 52기, 안무성 9공수여단장이 53기,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이 57기로 모두 육사 졸업생이다.

수도방위사령부 역시 이진우 사령관이 48기이며 계엄 출동 부대 중 군사경찰단의 김창학 단장은 54기다.

함께 출동한 1경비단의 조성현 단장은 학군 39기로 역대 첫 비육사 출신 단장이지만, 계엄에 휘말렸다.

국군방첩사령부의 경우 여인형 사령관이 육사 48기이며, 그는 윤석열 대통령, 김 전 장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정성우 1처장은 육사 53기로 전해졌다.
계엄군 일선 지휘관까지 대부분 육사…非육사는 배제된 듯
계엄 주축 세력 중 하나로 꼽히는 국군정보사령부는 문상호 사령관이 50기다.

'롯데리아 회동'과 계엄 당일 판교 100여단 대회의실 배석 멤버로 꼽히는 정보사의 김봉규 대령은 49기, 정성욱 대령은 52기로 전해진다.

100여단 단장은 육군 3사관학교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계엄 당일 야간에 비상소집령에 따라 부대로 복귀했다가 육사 출신 인물의 제지를 받고 대회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대장이 부대 내 출입을 제지받은 것이다.

계엄 선포 당시 판교 100여단 사무실에 대기했던 것으로 나타난 '탱크부대장'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은 50기로 문상호 사령관과 동기다.

그는 계엄 선포 당일 오후의 '2차 롯데리아 회동'에도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100여단 사무실에 있었던 방정환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은 육사 51기다.

50만 국군 중에 육군이 36만5천여 명으로 가장 많고, 육사는 육군 고급 장교의 요람인 만큼 육사 출신이 다수 개입된 것은 일견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그러나 현역 군인이 아님에도 국방부 장관 공관과 100여단 사무실 등 주요 공간을 드나들며 계엄을 기획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또한 육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계엄 주도 세력이 의도적으로 육사를 선별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노 전 사령관은 육사 41기로 김 전 장관의 3년 후배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 거처에서 확보된 수첩에는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가 있었다.

북한의 국지전 개시를 유도함으로써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만들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이를 정당화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개 민간인이 구상하기 어려운 내용이 버젓이 메모에 담긴 것이다.

육사 출신의 한 예비역 관계자는 "5·6공화국 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임관해 평생을 '국민을 위한 군대, 정치에서 벗어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며 "신뢰 회복에 앞으로 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