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자 조건을 붙여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던 정기상여금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법원이 지난 19일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판결을 내린 이후 기업 인사담당자의 문의가 로펌 등 관련 업계에 빗발치고 있다. 11년 만의 법리 전면 수정으로 일선 산업현장의 관련 업무 담당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에 주요 로펌이 일제히 온라인 긴급 세미나 개최에 나섰고, 일부 로펌에는 나흘 만에 17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 재직자 조건 유효하지만, 통상임금 포함

"상여금 어디까지"…통상임금 세미나에 기업신청 폭주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오는 27일 오후 2시, 법무법인 세종은 같은 날 오후 3시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웨비나를 연다. 김앤장에선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출신 주선아 변호사가 판결 분석을, 조범곤 변호사가 실무 대응방안을 발표하고, 세종에선 대법원노동법실무연구회 소속 윤혜영 김종수 변호사가 연사로 나선다. 율촌은 다음달 3일 웨비나를 개최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이명철 변호사가 판결 해설을, 최진수 변호사가 기존 통상임금 분쟁 영향을, 이광선 변호사가 향후 분쟁 양상과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설명한다.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의 문의가 폭주하면서 율촌 웨비나 신청자는 이날 기준 1707명에 달했다.

기업 실무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건 ‘재직자 조건’의 효력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①재직자 조건은 유효하다 ②재직자 조건이 있으면 고정성이 없다 ③고정성이 없으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3단계 논리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 산정 시 2단계인 ‘고정성’ 요건을 폐기했지만, 1단계인 재직자 요건의 유효성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이명철 율촌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통상임금 산정에서는 근로자에게 유리하지만, 정기상여금 자체의 지급 기준으로서 재직자 조건은 인정했다는 점에서 사용자 측에도 일정 부분 배려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실무상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연장근로수당 청구 소송에서는 재직자 조건이 있어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퇴직자가 정기상여금 자체를 청구하면 재직자 조건을 근거로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임금으로, 소정근로를 완수했다고 가정하고 정하기 때문에 재직자 조건이 유효하다면 징계자·휴직자·퇴직자에 대한 수당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할 필요는 없어진다.

○ 형식이 아니라 실질 내용이 관건

형식적 조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한 기업이 설·추석 상여금을 ‘목표달성 성과급’ ‘사업유치 기념 성과급’ 등으로 이름만 바꿔 지급한 경우 형식적 조건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버스회사의 무사고 운전수당처럼 소정근로와 상관없이 추가 조건 달성을 전제로 하는 수당은 여전히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취업규칙에 없지만 관행적으로 지급해온 명절상여금은 ‘노동관행’으로 인정돼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다툴 수 있게 됐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제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통상임금 회피 목적으로 형식적 조건을 내세운 경우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제기하지 않았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김상민 태평양 변호사는 “하급심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은 ‘올스톱’되지만, 그동안 제기하지 않았던 통상임금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들은 법정수당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휴일근로 축소나 임금체계 개편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