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주가 떨군 브로드컴, 무슨 AI칩 만들었길래 [글로벌 종목탐구]
통신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다. 브로드컴의 주가가 급등하는 동안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주가가 출렁하기도 했다. 브로드컴의 주가 상승은 이달 실적발표에서 혹 탄 최고경영자(CEO)가 구글, 메타, 바이트댄스와 함께 AI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앞서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애플도 브로드컴과 손잡고 AI칩을 만들겠다고 했다. 브로드컴은 AI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브로드컴은 현재 AI칩 부문 2위 기업으로 평가된다.

올들어 120% 상승한 주가

지난 24일 뉴욕 나스닥 증시에서 브로드컴은 239.6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연초 108.54달러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지난 12일 실적발표 이후 열흘 남짓한 기간에 주가가 32%나 상승했다. 시가총액은 1조1200달러까지 늘어나며 글로벌 시가총액 랭킹에서 TSMC를 한 계단 끌어내리고 9위로 올라섰다.

브로드컴은 2024 회계연도(2023년 11월~2024년 10월)에 전년보다 44%나 급증한 515억7000만달러(약 75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134억60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 참고로 한국 하이닉스의 경우 회계연도 기간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올해 약 66조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브로드컴의 내년 매출은 612억달러, 영업이익은 391억9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 주가 떨군 브로드컴, 무슨 AI칩 만들었길래 [글로벌 종목탐구]
브로드컴은 1991년 미국에서 설립된 반도체 회사로 싱가포르 기업 아바고(Avago)와의 합병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스마트폰과 노트북PC의 와이파이 칩셋을 비롯해 블루투스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에 쓰이는 유무선 통신·네트워크 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생산했다.

지난해 1억6183만달러(약 2218억원)를 받은 '연봉왕'으로 유명한 브로드컴의 CEO 혹 탄(Hock Tan)은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출신 미국인인 그는 철저한 성과주의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브로드컴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기술에서도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CA 테크놀로지스와 VM웨어 같은 기업들을 인수하며 반도체뿐 아니라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도 입지를 강화했다.

브로드컴 뭘 만들었나

브로드컴은 AI 딥러닝에 최적화된 맞춤형 처리장치 유닛(XPU)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XPU는 맞춤형반도체(ASIC)의 일종, 혹은 비슷한 개념이다. 브로드컴은 AI칩, AI가속기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쓰는 엔비디아와 달리 전용으로 설계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사용한 AI가속기를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AI 가속기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지만 엄청난 전력 소모가 단점이다. 반면 XPU는 AI를 위해 설계된 NPU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아 전력 소모가 적다. 엔비디아의 독점을 막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이 브로드컴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는 점도 호재다

브로드컴과 구글이 개발한 주문형 반도체 텐서프로세싱유닛(TPU) 트릴리움(Trillium)은 딥러닝에 특화됐다. 다만 미국 전문매체 등에 따르면 머신러닝 비영리단체 ML커먼스(MLcommons)가 챗GPT-3 학습 등을 이용해 벤치마크 테스트를 한 결과 트릴리움은 엔비디아 칩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와 함께 개발한 AI 가속기 MTIA는 TSMC의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제조되는 엔비디아의 가속기에 버금가는 5나노미터 공정에서 제조된다는 사실과 이전 세대와의 성능 향상 정도만 알려졌다.

혹 탄 CEO는 “하이퍼스케일러(AI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 센터 운영자)인 구글, 메타, 바이트댄스와 함께 개발한 맞춤형 AI 반도체를 2027년까지 각각 100만 개씩 납품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들과 협업 만으로 2027년까지 600억~900억달러의 매출이 발생할 것이란 얘기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브로드컴 본사 / 사진=AFP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브로드컴 본사 / 사진=AFP

고평가 논란, 주가 계속 갈까

주가가 급속히 오르면서 고평가 논란도 나오지만 회사 측은 자신만만하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긍정적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보고서를 낸 전 세계 투자은행(IB)의 89.6%가 매수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할란 서 JP모간 애널리스트는 "시장 점유율을 보수적으로 가정하더라도 브로드컴의 AI 사업은 향후 수년 동안 40~50% 이상의 연평균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엔비디아의 파이를 어느 정도 빼앗을지는 미지수다. 엔비디아의 제품 개발 속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가장 최근에 내놓은 블랙웰200의 경우(비록 설계 결함이 발견돼 양산이 미뤄졌으나) 현행 H100에 비해 성능을 대폭 끌어올리고 전력 소모를 대폭 줄였다. 엔비디아 측은 "1조80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대규모 AI 모델 훈련 시 H100이 8000개의 GPU로 15MW의 전력(약 3만가구의 전력 사용량)을 소비하는 반면 블랙웰은 2000개의 GPU로 4MW (약 8000가구의 전력 사용량)만 소비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메타나 구글의 전용 프로세서는 결함 여부나 성능이 외부에 공개되기 어렵고 불투명하다.

소프트웨어 인프라도 엔비디아가 앞서있다. GPU AI가속기는 CUDA와 같은 업계 표준이 된 기존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지만, NPU는 통합된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부족하고 회사에 따라 고립된 상태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6월 구글·MS·메타·인텔·AMD·브로드컴·시스코·HP엔터프라이즈 등 8곳은 AI 가속기의 글로벌 표준을 만들기 위한 ‘울트라 가속기 링크(UA링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주가 떨군 브로드컴, 무슨 AI칩 만들었길래 [글로벌 종목탐구]
이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