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남유럽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과거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위기의 진앙이었던 그리스와 스페인이 올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인하 등 구조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그리스와 스페인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 3.5% 성장하며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전쟁 충격에 따른 기저효과로 6.7% 성장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성장률과 증시, 물가, 실업률 및 정부 적자 등을 종합한 결과 스페인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좋은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종합 지표 1위는 그리스였다.

내년 전망도 밝다. S&P글로벌은 내년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높은 1.2%로 예상하면서 스페인(2.5%)이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과 프랑스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0.4%, 1.0%에 그쳤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내년 그리스와 포르투갈 경제가 각각 2.3%,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탈리아 성장률 전망치는 0.8%로 집계됐다. 크리스 와틀링 롱뷰이코노믹스 최고경영자(CEO)는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돌아온 반면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부활했다”며 “남유럽은 정말 흥미진진하다”고 평가했다.

2010년대 유로존 위기를 겪으며 PIGS라는 오명을 쓴 남유럽이 되살아난 배경으로 과감한 구조개혁이 거론된다.

유로존 사태 이전 스페인 경제의 최대 문제 중 하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2년 보고서에서 “무기계약 근로자는 높은 보호와 고용 안정성을 누리지만 임시직 근로자는 고용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부실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해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했다. 또 산별 단체 교섭을 기업별 교섭으로 전환하도록 장려해 경영 자율성을 높였다.

또 스페인은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에게 문호를 열었다. 스페인 정부는 2022년 8월 관광 교통 농업 등 노동력 부족 분야에서 일하는 이민자에 한해 체류를 허가받기 위한 거주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스페인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난해 말까지 스페인에서 창출된 일자리의 약 30%인 267만 개가 이주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관광업 중심이던 산업 구조도 제조·금융·정보기술(IT) 등으로 다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07년 25.2%에서 지난해 38.1%로 높아졌다.

그리스는 감세와 민영화 등 친기업 정책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리스는 2019년 보수우파 성향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부임한 뒤 법인세율을 28%에서 24%로 낮췄고 피레우스은행과 아테네국제공항 등 국유자산 지분을 매각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19년 아테네에 데이터센터를, 이듬해 화이자가 테살로니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건설하는 등 해외 기업의 투자가 이어졌다.

재정 적자 원인으로 꼽힌 과도한 복지도 손을 봤다. 그리스는 의약품 비용 본인부담률을 10%에서 25%로 높이고 병원 방문 수수료와 입원료를 인상하는 등 과잉 의료를 줄이기 위한 광범위한 의료 개혁을 단행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