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SRT(중요한 위험 이전 거래)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자본규제 부담을 피하기 위해 유럽 대형 은행 뿐 아니라 미국 중소 은행까지 앞다퉈 달려들면서 올해만 300억달러가 신규 발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발행 구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은행들의 자본적정성을 왜곡하고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3조까지 불어난 SRT…글로벌 금융시장 '뇌관'으로 부상

“2030년엔 900억달러로 불어날 것”

2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발행된 글로벌 SRT는 총 166억달러로 집계됐다. 10월 이후에도 발행이 급증하고 있어 연말까지 발행액은 최대 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 대비 25% 급증한 수치다.

SRT는 쉽게 말해 은행들이 대출규제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출채권 관련 신용위험을 다른 투자자들에 떠넘기는 거래다. 은행들은 자동차 대출 등 소매대출을 하면 대출 부실(채무 불이행)에 대비해 규제 자본을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한다. 이 때 일종의 신용연계증권인 SRT를 발행해 일부 채무 불이행 위험을 다른 투자자에게 이전하면 은행은 자본 축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SRT 투자자들은 만기 때까지 주기적으로 이자를 받다가 별 다른 이벤트가 없으면 만기에 원금을 전액 회수할 수 있다. 기초자산에서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면 투자자는 손실을 부담한다. 기초자산의 위험 수준에 따라 기대수익률은 연 8~12%에 달한다.

SRT 시장은 은행 자본 건전성 기준인 바젤II가 2004년 SRT를 통한 규제 자본 경감을 허용하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내년 7월 바젤III 시행을 앞두고 자본 확충 부담이 늘어나는 유럽 은행들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 위험 자산 축소에 나서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자본규제 강화 압박이 커지면서 SRT 거래가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 펨버튼자산운용에 따르면 2030년엔 110여개 은행이 SRT 발행에 참여하면서 연간 발행액이 90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위험 수준 놓고 거세지는 논란

문제는 SRT 발행이 급증하면서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은행이 SRT를 발행하면 실제 자본 규모엔 변화가 없는데도 규제자본비율(자본/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해 은행의 대출 여력이 부풀려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은행의 SRT 발행이 늘수록 표면적으로 은행의 자본적정성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사실은 해당 은행의 취약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저조한 수익성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RT 투자자들이 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다른 은행의 SRT에 투자하는 경우 ‘은행 간 상호 연계성’이 높아지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연쇄 위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수장이었던 실라 베어는 “SRT가 금융위기 전파 경로였던 주택담보증권을 상기시킨다”며 차입을 통한 SRT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0억달러 대출과 연계된 9000만달러어치 SRT를 발행한 BofA는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자사의 SRT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SRT는 발행 은행이 기초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신용위험을 투자자들에게 부분적으로만 전가하는 구조여서 2008년 금융위기를 확대시켰던 파생상품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또 SRT 투자자는 상당수가 연기금·보험사 등 장기 투자자라 유동성·지급 능력이 크다는 점도 위기론에 반박하는 근거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