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장식미술 박물관에서 열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금은 세공 하우스 크리스토플(Christofle) 전시에 다녀왔다. 크리스토플 하우스의 200년 역사의 아카이브 창작품과 프랑스 금세공 기술의 노하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로 2024년 11월 14일부터 2025년 4월 20일까지 방문객들을 크리스토플의 눈부신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크리스토플은 은식기와 실버 커트러리(포크와 나이프 등 식사 서빙 시 사용되는 기구)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프랑스 프리미엄 브랜드이다. 샤를 크리스토플(Charles Christofle)은 1830년 회사를 설립하여 프랑스 식문화에 새로운 금세공 기술을 도입하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프랑스 은식기를 급격히 파장시킨 장본인이다.

이번 전시에는 식탁에서 사용하는 스푼, 나이프와 포크부터 파리 만국 박람회의 기념비적인 꽃병, 주얼리, 현대 예술 작품, 그리고 그림, 드로잉, 포스터 등 약 1000점에 달하는 아카이브 작품을 선보여 명문 금세공 하우스의 뛰어난 창작성과 노하우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Tuileries Palace(튀일리 궁전), Napoléon(나폴레옹) 3세, 테이블 센터 피스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Tuileries Palace(튀일리 궁전), Napoléon(나폴레옹) 3세, 테이블 센터 피스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샤를 크리스토플은 1842년에 비귀금속에 은이나 금을 도금하는 혁신적인 금세공 기술을 도입했다. 이러한 새로운 프로세스 덕분에 그는 이전에 귀족층에만 허용되었던 은 테이블 웨어를 대중화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프랑스혁명 이후 급격히 늘어난 중산계층은 점차 고급 식기를 사용하고자 하였지만, 순은으로 만든 식기는 가격이 너무 비싸고 구하기 힘들어 극소수 부유, 귀족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샤를 크리스토플은 전기도금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평범한 금속에 금 또는 은을 얇게 도금하고 부식까지 방지할 수 있는 혁명적인 귀금속 가공 기술을 시도하였다.

전기도금 기술로 만든 제품들은 은 제품보다 오히려 더 우아하고 마감 처리가 깨끗하며 가격도 훨씬 저렴하여 크리스토플의 제품은 중산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크리스토플이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립과 유럽 여러 나라 왕실의 공식 식기 공급업체로 지정되면서 인기는 더 폭발하게 되었다.
Marcel Eudes & Claude Leprêtre <물병> (1873)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Marcel Eudes & Claude Leprêtre <물병> (1873)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20세기 디자인의 탐험가라고 불리는 지오 폰티(Gio Ponti),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드레 퓌망(Andree Putman),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및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등 당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협력하여 크리스토플은 전통적인 금 세공품의 용도를 새롭게 하고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예술의 실험실이 되었다.
[좌] Gio Ponti <화살 촛대(Candelabra Flèche)> (1928-1942), [우] Andrée Putman <Vertigo 컬렉션> (2003) / 사진. © Christofle
[좌] Gio Ponti <화살 촛대(Candelabra Flèche)> (1928-1942), [우] Andrée Putman <Vertigo 컬렉션> (2003) / 사진. © Christofle
Christofle & Karl Lagerfeld <MOOD(무드 식기 세트)> / 사진. © Christofle
Christofle & Karl Lagerfeld <MOOD(무드 식기 세트)> / 사진. © Christofle
크리스토플의 창립 후 거의 2세기가 지난 지금, 비디오 게임 콘솔, 커피잔, 텀블러, 또는 신발 상자와 같은 일상 소품을 디자인 오브제로 탄생시키고 있다. 몇 년 전 소더비에서 마이클 조든이 1984년에 신었던 나이키는 은 도금된 크리스토플 신발 상자에 담겨 147만 2천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파리, 생드니 그리고 노르망디에 위치한 크리스토플 공장 작업실을 재현해 놓아 방문객들에게 은과 금도금, 포크 제조의 공정을 보여주고 프랑스 세공 기술의 전통적인 도구들과 현대 디지털 기술이 조화로운 아틀리에를 만날 수 있다.
포크 매트릭스 장식 조각 / 사진. © Christofle Manufacture
포크 매트릭스 장식 조각 / 사진. © Christofle Manufacture
Charles Mewès가 디자인한 <Ritz hotel Paris 포크> / 사진. © Christofle
Charles Mewès가 디자인한 <Ritz hotel Paris 포크> / 사진. © Christofle
이 전시에는 19세기 서유럽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일본 미술 운동인 자포니즘(Japonism) 스타일 그리고 아르데코에 이르기까지 아방가르드 한 밝은 색상과 패턴으로 대담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시기는 크리스토플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창의적인 시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Christofle, une brillante histoire> 전시회 내부, '자포니즘 스타일' 가구 디자인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Christofle, une brillante histoire> 전시회 내부, '자포니즘 스타일' 가구 디자인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2층 전시장에는 전통적인 클래식한 수저부터 모던한 차 세트 디자이너 작품까지 크리스토플의 시그니처 테이블 웨어와 일상 용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상품 포스터, 광고 삽입물, 카탈로그는 혁명적이었던 전기 도금 기술 도입뿐 아니라 마케팅 영업 전략에도 크리스토플은 일찍부터 크게 앞서 나갔던 모습을 볼 수 있다.
Christofle의 초기 광고 포스터 (1954)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Christofle의 초기 광고 포스터 (1954)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크리스토플은 또한 왕, 황제, 그리고 대통령까지 1840년대부터 궁전, 정부 부처 및 대사관에도 은식기 세트를 제공해 왔다. 제2 제정 시대의 나폴레옹 3세부터 현 프랑스 대통령까지, 그리고 교황 피우스 9세,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제국, 헝가리 제국 왕실까지 공식 식기 공급업체가 돼 확고한 위상을 굳혔으며 테이블 웨어 외에도 테이블 센터피스, 조각품, 화분, 촛대 등으로 프랑스 테이블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크리스토플은 19세기 후반부터 성대한 국제 외교 리셉션부터 궁전, 호텔, 기차, 호화 페리 선박, 비행기의 테이블까지 럭셔리 세계여행에 사용되었던 테이블 웨어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하며 생활 예술과 프랑스 럭셔리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 최고급 리츠 호텔, 콩코드 비행기, 노르망디 여객선과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에서도 크리스토플 테이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노르망디 페리 1등석 테이블 세팅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노르망디 페리 1등석 테이블 세팅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1980년대 중반부터는 주얼리 분야에도 크리스토플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앙드레 퓌망(Andree Putman), 미셸 오카 도네르(Michele Oka Doner) 또는 마드무와젤 오렐리 비더만(Mademoiselle Aurelie Bidermann) 이 주얼리 디자인 컬렉션에 참가하였다.
Michele Oka Doner <Palmaceae(야자과 컬렉션 스털링 실버 목걸이)> (2005) / 사진. © Christofle
Michele Oka Doner <Palmaceae(야자과 컬렉션 스털링 실버 목걸이)> (2005) / 사진. © Christofle
이번 전시회의 마무리 동선은, 1860년대의 화려한 테이블 세팅과 2002년 앙드레 퓌망(Andree Putman)이 디자인한 모던한 베르티고(Vertigo) 테이블 세트의 조화와 대조,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마법 같은 테이블 디스플레이로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Christofle, A Brilliant History> 전시 전경. 2023년 찰스 3세 국왕(King Charles III)의 엘리제 대통령 궁(Palais de l'Élysée) 만찬을 위해 사용된 식탁 세트의 일부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Christofle, A Brilliant History> 전시 전경. 2023년 찰스 3세 국왕(King Charles III)의 엘리제 대통령 궁(Palais de l'Élysée) 만찬을 위해 사용된 식탁 세트의 일부 / 사진. © Christophe Dellière/Les Arts Décoratifs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