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불황에도 한국·남미 등 변방의 작가들은 약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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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술계 결산
'천국과 지옥' 공존한 미술계
흑인·남미·한국 작가 웃고
미술시장은 침체 지속
'천국과 지옥' 공존한 미술계
흑인·남미·한국 작가 웃고
미술시장은 침체 지속
2024년 세계 미술계에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했다. 대부분의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불황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시장이 극도로 위축됐고, 갤러리·경매·아트페어 대부분이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반면 한국과 남미를 비롯해 미술계의 ‘변방’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던 작가들에게는 희망찬 한 해였다. 올해 국내외 미술계의 큰 흐름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① 한국 미술의 재발견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미술의 존재감이 약진한 해였다.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에는 김윤신, 이강승 등 한국 작가 4인이 작품을 출품했다. 특히 김윤신은 미국 온라인 미술품 플랫폼인 아트시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88세의 나이로 세계 미술계에 극적으로 등장해 제 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설명이다. 3~9월에는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 전시장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김수자 작가가 특별전을 열었고, 10월 이불 작가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건물 외벽에 조각 작품 4점을 걸었다. 하이라이트는 10월 영국 런던에서 펼쳐졌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이미래)과 헤이워드갤러리(양혜규)가 한국 작가들에게 안방을 내줬다. 타데우스로팍의 정희민, 크롬웰플레이스의 서용선 등 다른 곳에서도 한국 작가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② 남미, 아시아…참신함 찾는 미술계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참신함’에 대한 서양 주류 미술계의 갈증과 맞닿아 있다. 현재 세계 미술에서 정사(正史)로 취급받는 건 서양미술사. 오직 ‘백인 남성’만 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관심은 여성, 흑인 등 다른 성(性)과 인종의 작가로 확대됐다. 미술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것, 즉 참신함이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술이라는 요리의 ‘양념’ 정도로 취급받던 이들 비(非)백인·비남성 작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미술계 핵심으로 진입해 ‘메인 디쉬’가 되는 데 성공했다. 올해 필라델피아 미술관, 애틀랜타 하이 뮤지엄 오브 아트, 휴스턴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미국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흑인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브라질 출신인 라틴 인종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베네치아 비엔날레 큐레이터가 된 것도, 올해 행사 주제가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술시장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소더비의 근현대 남미 작가 작품 판매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이후 50% 이상 급증했다. 2020년~2023년 관련 매출은 2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미국 원주민 등 ‘원주민 미술’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작품을 낸 미국 원주민 예술가인 에미 화이트호스는 최근 필립스 경매에서 추정가 8배 이상의 가격(17만7000달러)에 작품을 판매했다. 앞으로도 미술계와 미술시장은 이런 ‘소수자성’을 따라 움직일 확률이 높다.
③줄줄이 죽쑨 아트페어·경매 반면 미술시장 실적은 바닥을 기었다. 2021~2022년 미술시장 대호황 때 무리하게 신규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합병을 감행했던 갤러리·아트페어·경매사들이 줄줄이 불황의 유탄을 맞았다. ‘프리즈 서울’을 주최하는 프리즈의 모회사 엔데버가 아트페어 사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업황과 무관하지 않다. 프리즈 런던을 비롯한 세계 주요 아트페어의 판매실적과 열기도 평년 이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매 시장 실적도 저조했다. 해외 미술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리스티의 올해 매출은 57억달러로 지난해(62억달러) 대비 8% 감소했다. 소더비의 매출은 올해 약 60억달러로 지난해(79억달러) 대비 약 25%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국내 10개 경매사의 자료를 수집해 최근 발표한 ‘2024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 연말 결산’에 따르면, 올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1151억원으로 지난 2020년 이후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④ 그래도 미술시장은 계속된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1954)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2116만달러에 팔렸다. 모네의 '수련'도 소더비 경매에서 6550만달러에 새 주인을 찾았다. 경매 실적은 급감했지만, 경매사가 직접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프라이빗 세일(비공개 판매) 실적은 급증했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올해 프라이빗 세일 실적은 역대 2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매사의 비공개 판매는 가격이 너무 높거나 낮아질 수 있는 경매와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에 작품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전히 명작에 대한 수요는 건재하단 얘기다.
미술시장 하락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해석도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투자회사 UBS가 지난 10월 발간한 ‘2024년 컬렉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올해 상반기 미술품 구입 액수 중간값은 2만5555달러(약 3535만원)였다. 지난해 지출액 중간값이 5만달러(약 6918만원)고, 반기별로 나눴을 때 2만5000달러(약 3459만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락세가 멈춘 것으로 보인다. 향후 6개월 동안 글로벌 미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91%가 “낙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77%)보다 눈에 띄게 증가한 수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① 한국 미술의 재발견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미술의 존재감이 약진한 해였다.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에는 김윤신, 이강승 등 한국 작가 4인이 작품을 출품했다. 특히 김윤신은 미국 온라인 미술품 플랫폼인 아트시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88세의 나이로 세계 미술계에 극적으로 등장해 제 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설명이다. 3~9월에는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 전시장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김수자 작가가 특별전을 열었고, 10월 이불 작가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건물 외벽에 조각 작품 4점을 걸었다. 하이라이트는 10월 영국 런던에서 펼쳐졌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이미래)과 헤이워드갤러리(양혜규)가 한국 작가들에게 안방을 내줬다. 타데우스로팍의 정희민, 크롬웰플레이스의 서용선 등 다른 곳에서도 한국 작가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② 남미, 아시아…참신함 찾는 미술계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참신함’에 대한 서양 주류 미술계의 갈증과 맞닿아 있다. 현재 세계 미술에서 정사(正史)로 취급받는 건 서양미술사. 오직 ‘백인 남성’만 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관심은 여성, 흑인 등 다른 성(性)과 인종의 작가로 확대됐다. 미술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것, 즉 참신함이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술이라는 요리의 ‘양념’ 정도로 취급받던 이들 비(非)백인·비남성 작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미술계 핵심으로 진입해 ‘메인 디쉬’가 되는 데 성공했다. 올해 필라델피아 미술관, 애틀랜타 하이 뮤지엄 오브 아트, 휴스턴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미국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흑인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브라질 출신인 라틴 인종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베네치아 비엔날레 큐레이터가 된 것도, 올해 행사 주제가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술시장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소더비의 근현대 남미 작가 작품 판매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이후 50% 이상 급증했다. 2020년~2023년 관련 매출은 2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미국 원주민 등 ‘원주민 미술’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작품을 낸 미국 원주민 예술가인 에미 화이트호스는 최근 필립스 경매에서 추정가 8배 이상의 가격(17만7000달러)에 작품을 판매했다. 앞으로도 미술계와 미술시장은 이런 ‘소수자성’을 따라 움직일 확률이 높다.
③줄줄이 죽쑨 아트페어·경매 반면 미술시장 실적은 바닥을 기었다. 2021~2022년 미술시장 대호황 때 무리하게 신규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합병을 감행했던 갤러리·아트페어·경매사들이 줄줄이 불황의 유탄을 맞았다. ‘프리즈 서울’을 주최하는 프리즈의 모회사 엔데버가 아트페어 사업 매각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업황과 무관하지 않다. 프리즈 런던을 비롯한 세계 주요 아트페어의 판매실적과 열기도 평년 이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매 시장 실적도 저조했다. 해외 미술 관계자들에 따르면 크리스티의 올해 매출은 57억달러로 지난해(62억달러) 대비 8% 감소했다. 소더비의 매출은 올해 약 60억달러로 지난해(79억달러) 대비 약 25%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국내 10개 경매사의 자료를 수집해 최근 발표한 ‘2024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 연말 결산’에 따르면, 올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1151억원으로 지난 2020년 이후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④ 그래도 미술시장은 계속된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1954)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2116만달러에 팔렸다. 모네의 '수련'도 소더비 경매에서 6550만달러에 새 주인을 찾았다. 경매 실적은 급감했지만, 경매사가 직접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프라이빗 세일(비공개 판매) 실적은 급증했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올해 프라이빗 세일 실적은 역대 2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매사의 비공개 판매는 가격이 너무 높거나 낮아질 수 있는 경매와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에 작품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전히 명작에 대한 수요는 건재하단 얘기다.
미술시장 하락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해석도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투자회사 UBS가 지난 10월 발간한 ‘2024년 컬렉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올해 상반기 미술품 구입 액수 중간값은 2만5555달러(약 3535만원)였다. 지난해 지출액 중간값이 5만달러(약 6918만원)고, 반기별로 나눴을 때 2만5000달러(약 3459만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락세가 멈춘 것으로 보인다. 향후 6개월 동안 글로벌 미술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91%가 “낙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77%)보다 눈에 띄게 증가한 수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