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인공지능(AI)디지털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낮춘 법안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정부에 건의한다. 내년 3월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정부와 야당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학교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AI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 대신 ‘교육자료’로만 활용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AI디지털 교과서도 교과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 추진’은 이미 문재인 정부 때부터 추진한 교육 과정이므로 개정 당시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는 게 교육부 주장이다.

이후 발행사들과 함께 교과서를 개발했고, 76종이 검정을 통과해 시중 보급을 앞두고 있다. 교육부는 이와 별도로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해 올해에만 인프라 확충, 교사 연수 등에 1조2797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참고자료로 강등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법안 부칙에 소급 적용 조항도 담겨 있어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까지 모두 교육자료로 지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달리 교육자료는 채택 여부가 학교장 재량이다. 교육자료는 무상·의무 교육 대상이 아니라 학교나 학부모가 구독료를 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콘텐츠가 사장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장 교과서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사들이 집단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총리는 법안 통과 직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AI디지털 교과서는 교과서로 활용될 때 지역 간·학교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며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재의 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교과서’ 지위는 유지하되 내년 1년은 희망하는 학교에 한해 도입하는 시범 운영 기간으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