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 대로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노조 측 추산 약 3000명이 참석했다.  기업은행 노조 제공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 대로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노조 측 추산 약 3000명이 참석했다. 기업은행 노조 제공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다.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가 아니라 은행이 주도하는 파업은 1961년 기업은행 창립 후 처음이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여파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고사 위기에 내몰린 가운데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은행 노조가 ‘밥그릇 지키기’ 파업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포퓰리즘 공약 지키려 ‘파업’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 대로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노조 측 추산 약 3000명이 참석했다.  기업은행 노조 제공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앞 대로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노조 측 추산 약 3000명이 참석했다. 기업은행 노조 제공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12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찬성률 95%)를 거쳐 27일 하루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파업 참가 대상은 지점장과 팀장급을 제외한 3급 1년 차 이하 직원으로 9469명이다. 기업은행 전체 직원(1만3439명)의 70.5%에 달한다.

기업은행 노조는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보다 30% 이상 적은 ‘임금 차별’을 파업 이유로 내걸었다. 시중은행과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턱없이 낮은 보상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집계 결과 국민(1억1910만원) 신한(1억956만원) 하나(1억1628만원) 우리(1억979만원) 등 4대 시중은행의 작년 말 기준 평균 연봉은 1억1368만원으로 기업은행(8528만원)보다 33.3%(2840만원) 많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달리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사측이 마음대로 임금 인상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의 ‘공무원 임금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임금과 복리후생비 등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연간 총액을 미리 정해두고 그 범위에서만 인건비를 지출하는 구조(총인건비 제도)다. 기업은행은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가 요구한 임금 인상률(2.8%)이 공무원 가이드라인(2.5%)을 웃도는 만큼 수용이 어렵다고 했다. 이익배분제와 보상 휴가 전액 현금 지급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행 노조도 지난 24일 내놓은 파업 관련 자료를 통해 “기업은행은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승인 없이 사측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거의 없다”며 임금 문제를 노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총파업은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치러진 기업은행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당선된 류장희 위원장이 무리한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총파업 카드를 꺼냈다고 보고 있다. 류 위원장은 특별성과급과 우리사주, 보상 휴가(시간 외 수당)를 금액으로 환산해 “1600만원의 현금성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업은행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노조 요구는 공공기관 해제 없이는 애초부터 수용이 불가능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 ‘품위’ 지켜달라더니

국책은행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던 기업은행 노조가 돌연 임금 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기업은행 노조는 민영화 반대와 공공기관 성격에 맞지 않는 투자 상품 판매 중지 등을 요구하며 “직원들이 국책은행원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해왔다. 기업은행 노조는 최근까지 퇴직연금·개인고객 (평가)지표 전면 폐지와 본점 업무량 30% 감소 등을 요구했다.

이번 기업은행 노조의 파업에 “시중은행처럼 치열한 경쟁은 거부한 채 임금만 높여달라는 것 아니냐”며 금융권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경제계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1460원을 돌파하는 등 ‘환율 쇼크’ 여파로 수출입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은행인 기업은행이 파업을 벌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경기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사 대표는 “기업은 문을 닫게 생겼는데 기업은행은 파업해도 이자를 받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