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크 투이만스: 과거'(吕克•图伊曼斯:过去) 전시가 2024년 11월 16일 ~ 2025년 2월 16일까지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 UCCA 울렌스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벨기에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가 뤽 튀망(1958년생)의 개인전으로, 중국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이자 중요한 회고전 중 하나이다.

피터 일리 UCCA 큐레이션 컨설턴트가 뤼크 투이만스(Luc Tuymans)과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아티스트 커리어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것으로, 미국, 유럽, 아시아의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튀망의 작품들과 개인 소장품까지, 1975년부터 2023년까지의 작품 90여 점을 전시한다.
<Luc Tuymans: The Past> 전시 전경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Luc Tuymans: The Past> 전시 전경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그의 작품은 냉철하고 절제된 톤과 기존 이미지에 대한 의미심장한 활용으로 유명한데, 작품은 일상의 평범한 물건부터 역사적으로 영향이 큰 인물과 사건까지 다루고 있다.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 겪은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폭력 등으로 인한 기억을 통해 불안과 트라우마, 기존 이미지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우화적인 면이 있다.

독특한 구상 회화와 희소한 색채로 유명한 튀망의 그림 스타일은 마치 의도한 필치처럼 희미하고 모호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다. 그의 작품은 늘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며 역사의 무게감과 현실적인 반성이 가득하다. 그는 현실의 사물을 연결하는 선형의 시간을 그림으로 깨뜨리는 힘을 통해 마치 역사의 상처를 하나둘씩 풀어내려는 듯하다.
Luc Tuymans <Body> (1990)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Luc Tuymans <Body> (1990)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Body' 작품은 머리와 다리가 잘려 나간 몸통이 캠퍼스를 꽉 채웠다. 허리에 있는 두 개의 갈색 선은 상처 후 남은 흉터를 연상시키지만, 자세히 보면 인형의 보충재를 채우는 봉제 구멍이다.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유도하고 색이 쉽게 바래는 안료와 오래된 효과를 주게 터치한 유화 페인트로 작품을 그려낸 작가는 자기 말로는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담은 유물처럼 보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Luc Tuymans <Bell Boy> (2023)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Luc Tuymans <Bell Boy> (2023)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위 작품은 1930년대 독일 드레스덴에서 촬영한 영상을 떠올려 그린 작품이다. 호텔에서 손님의 짐을 나르는 벨보이의 뒷모습이지만, 그의 자태는 묘하게 군인의 자세와 제복을 연상케 한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어둠을 향해 돌아서는 모습은 튀망의 이전 작품에서 계속 나타나는 폭력, 트라우마, 파시스트 독재에 대한 반복되는 주제를 반영한다

또한 초상화에서 튀망이 특별히 정교한 화법에 대한 추구를 거부한 것은 초상화에 대한 예술가의 도전으로 볼 수 있다. 화면 구도나 화폭 크기, 인물 자세 등이 표준적인 초상화를 연상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라졌다. 개성과 표정이 사라진 가면을 쓴 듯 의도적으로 사라진 인물의 정체도 화면의 시각적 기호 속에 녹아 있다.
Luc Tuymans <A Flemish Intellectual: 플랑드르 지식인> (1995) / 사진출처. © Matthias Karch/ozaberlin.com
Luc Tuymans <A Flemish Intellectual: 플랑드르 지식인> (1995) / 사진출처. © Matthias Karch/ozaberlin.com
그림 속 남자의 이미지는 전체 윤곽이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되고 시선의 응시도 볼 수 없다. 그에게서는 어떤 신분적 특성도 보이지 않는다. 육체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오래된 유령의 존재에 가깝다. 사실 이 그림은 유명한 플랑드르 애국주의와 지역주의 소설가인 어니스트 클레스의 초상화이다. 이 작가는 플랑드르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조명될 때까지 문학사에서 잊힌 적이 있다. 그림에서 클레스의 흐릿한 이미지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의 잔재를 닦아낸 듯하다.
Luc Tuymans <Hands> (1978) / 사진. © Studio Luc Tuymans
Luc Tuymans <Hands> (1978) / 사진. © Studio Luc Tuymans
'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연대가 가장 이른 그림으로, 아직 젊은 학창 시절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튀망 창작 세계의 주요 맥락을 볼 수 있다. 직접 스케치한 초상화가 아닌 잡지 사진 한 장을 토대로 그린 이 작품은 직접 관찰을 통해 그리는 것보다는 매개화 된 소재에 더 열중하는 그의 성향을 보여준다. 인물의 이목구비가 거의 말끔히 지워지고, 간결하게 칠해진 짙은 색의 의상은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손은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 상당히 거칠게 그려서 마치 콜라주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관찰자의 시선과 궁금증을 집중시킨다.

뤼크 투이만스은 퇴색감을 준 독특한 그림 스타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1990년대 이후 자신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수많은 중국 작가들을 포함해 후속 예술가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오래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중국에 관한 작품들도 선보였다.
Luc Tuymans <Morning Sun> (2003)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Luc Tuymans <Morning Sun> (2003)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Morning Sun' 작품은 2003년 작가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다. ‘모닝 썬’이란 제목은 이것이 이른 아침에 촬영된 사진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의 떠오르는 발전을 관찰한 작가의 시선도 있어 보인다. 원형 구조물을 통해 바라보는 상하이 금융무역지대 중심에 위치한 동방명주와 마천루들은 마치 망원경으로 상하이와 중국의 발전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Luc Tuymans <Shenzhen> (2019)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Luc Tuymans <Shenzhen> (2019) / 사진출처. © U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뤼크 투이만스이 노트북 화면을 통해서 본 션전에서 열리는 축제 동영상을 캡처해서 그린 작품이다. 중국의 경제특구 중에서 가장 빠르게 변모하는 션전의 하늘 위로 풍선이 올라 가고 있다. 작가는 화면을 정지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뒤로가기’ ‘재생’ ‘빨리 감기’의 기호를 그려 넣음으로 이 작품이 도시 풍경을 직접 그린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 도시 발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속도감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박종영 한중연문화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