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달팽이 집, 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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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원시]
달팽이 집
김환영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태헌의 한역]
蝸屋(와옥)
蝸牛生而有一屋(와우생이유일옥)
遠勝或人平生無(원승혹인평생무)
加之身大屋亦大(가지신대옥역대)
移徙賣買非所需(이사매매비소수)
嚴冬透骨雪寒裏(엄동투골설한리)
好哉毫無見逐虞(호재호무견축우)
[주석]
* 蝸屋(와옥) : 달팽이 집. 작고 초라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보통은 자기 집을 겸손하게 칭할 때 사용한다. 여기서는 본래의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蝸牛(와우) : 달팽이. / 生而有(생이유) : 날 때부터 ~을 가지고 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생이지지(生而知之)’와 결부시켜 이해하면 된다. ‘生而知之’는 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안다는 뜻이다. / 一屋(일옥) : 집 한 채, 한 채의 집.
* 遠勝(원승) : ~보다 훨씬 낫다. / 或人(혹인) : 어떤 사람, 아무개. / 平生(평생) : 평생, 평생토록. / 無(무) : <~이> 없다.
* 加之(가지) : 그 위에, 게다가. / 身大(신대) : 몸이 크다, 몸이 커지다. / 屋亦大(옥역대) : 집 또한 크다, 집 또한 커지다.
* 移徙(이사) : 이사하다, 이사. / 賣買(매매) : 매매하다, 매매. / 非所需(비소수) : 필요로 하는 바가 아니다, 요구되는 바가 아니다.
* 嚴冬(엄동) : 혹독하게 추운 겨울. / 透骨(투골) : 뼛속까지 스며들다, 뼈에 사무치다. / 雪寒裏(설한리) : 눈이 내리는 때나 눈이 내린 뒤의 추위 속에서.
* 好哉(호재) : ~이 좋구나, ~이 좋겠구나. / 毫無(호무) : 조금도 없다, 전혀 없다. / 見逐虞(견축우) : 쫓겨날 염려. ‘見逐之虞(견축지우)’를 줄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見逐’은 축출(逐出)을 당하다, 곧 쫓겨난다는 의미이다.
[한역의 직역]
달팽이 집
달팽이는 나면서부터 집이 한 채 있으니
어떤 사람 평생토록 없는 것보다 훨씬 낫네.
게다가 몸이 커지면 집 또한 커지니
이사며 매매는 필요로 하는 바 아니지.
뼛속까지 스며드는 엄동의 설한 속에서
좋겠구나, 쫓겨날 염려 전혀 없는 것이!
[한역노트]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위키 백과 사전』에서 달팽이 항목을 찾아보면, “복족류 연체동물 가운데 와선형의 패각을 가지고 육상, 수중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상당히 어려운 이 ‘정의’를 읽으면서 뜻을 바로 이해했다면 자연과학이나 자연과학 용어에 대한 이해가 어지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족류(腹足類)’라는 말은 ‘배가 발인 생명체 무리’라는 뜻인데, 간단히 배를 발처럼 움직이며 이동하는 생명체 정도로 이해해 두면 무방할 듯하다. 위의 시와 관련하여 우리가 달팽이의 정의 가운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와선형(渦旋形)의 패각(貝殼)’이라는 표현인데, 이것이 시인이 언급한 달팽이 ‘집’이다.
어느 시인은 달팽이 집을 평생토록 짊어지고 살아야 할 ‘등짐’으로 여겼지만, 김환영 시인은 이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등치(等値)시켜 영장류인 인간이 미물류인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계기로 삼았다. 짐작하건대 집과 관련한 서러움이나 괴로움 등이 없었다면 시인은 결코 이런 시를 짓지 못했을 것이다. 가령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태어난 이른바 ‘금수저’가 달팽이를 보고 집 없는 자들의 서러움 같은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저 유명한 프랑스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Escargot)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시인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고 또 고마운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게는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일과 더불어 휴식은 생명체들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지고 있으니 여타의 생명체들이 집을 만들거나 마련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수고는 면제를 받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달팽이의 집이 여타 생명체들의 집과 동일한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람의 경우, 집이 없으면 타인의 집에 세를 들어 살 수밖에 없다. 자기 집이 아니므로 이런저런 제약이 있을 것이고, 그 제약에 따른 불편 또한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이사’가 바로 그 감내해야 할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모든 이사가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셋집을 넓혀 가거나 더 좋은 셋집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라 셋집을 줄여 가거나 더 못한 셋집으로 가는 경우라면, 이사는 괴로움이거나 아픔이 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형편이 좋아 자기 집을 사고파는 경우라도 고통이 따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돈에 맞추자니 집이 초라하고, 마음에 맞추자니 주머니가 얄팍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엄동설한에 당하는 일이라면 그 고통은 배가되고 슬픔은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따스함이 그리워지고 간절한 때가 바로 지금과 같은 엄동설한이지 않은가!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음미하다가 문득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도 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영혼이 깃드는 집은 지금 어떠한가? 육신이 깃드는 집처럼 평수를 넓히고 이사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영혼이 깃드는 집이 없다면 육신이 깃드는 집이 없는 것보다 더 슬프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육신에게도 영혼에게도 집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합 6연 12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는데,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시의 구조 때문에 원시의 언어를 충실하게 직역하는 대신, 원시의 의미에 주안점을 두고 요약 번역을 하는 작업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시의 제2연과 제6연의 마지막 행처럼 시화를 포기한 시구도 있고, 역시의 제2구처럼 원시에는 없는 내용을 보충한 시구도 있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역시의 제2구는 원시의 제2연에서 그 외연을 확장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다만 시인의 용심처(用心處)로 여겨지는 제6연의 마지막 행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를 한역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을 선사했던 시구를, 한시와 한글시의 언어 생리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역자가 부득이하게 한역을 포기한 조치였음을 헤아려주면 감사하겠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을 하였으므로 압운자는 ‘無(무)’, ‘需(수)’, ‘虞(우)’가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달팽이 집
김환영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태헌의 한역]
蝸屋(와옥)
蝸牛生而有一屋(와우생이유일옥)
遠勝或人平生無(원승혹인평생무)
加之身大屋亦大(가지신대옥역대)
移徙賣買非所需(이사매매비소수)
嚴冬透骨雪寒裏(엄동투골설한리)
好哉毫無見逐虞(호재호무견축우)
[주석]
* 蝸屋(와옥) : 달팽이 집. 작고 초라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보통은 자기 집을 겸손하게 칭할 때 사용한다. 여기서는 본래의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蝸牛(와우) : 달팽이. / 生而有(생이유) : 날 때부터 ~을 가지고 있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생이지지(生而知之)’와 결부시켜 이해하면 된다. ‘生而知之’는 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안다는 뜻이다. / 一屋(일옥) : 집 한 채, 한 채의 집.
* 遠勝(원승) : ~보다 훨씬 낫다. / 或人(혹인) : 어떤 사람, 아무개. / 平生(평생) : 평생, 평생토록. / 無(무) : <~이> 없다.
* 加之(가지) : 그 위에, 게다가. / 身大(신대) : 몸이 크다, 몸이 커지다. / 屋亦大(옥역대) : 집 또한 크다, 집 또한 커지다.
* 移徙(이사) : 이사하다, 이사. / 賣買(매매) : 매매하다, 매매. / 非所需(비소수) : 필요로 하는 바가 아니다, 요구되는 바가 아니다.
* 嚴冬(엄동) : 혹독하게 추운 겨울. / 透骨(투골) : 뼛속까지 스며들다, 뼈에 사무치다. / 雪寒裏(설한리) : 눈이 내리는 때나 눈이 내린 뒤의 추위 속에서.
* 好哉(호재) : ~이 좋구나, ~이 좋겠구나. / 毫無(호무) : 조금도 없다, 전혀 없다. / 見逐虞(견축우) : 쫓겨날 염려. ‘見逐之虞(견축지우)’를 줄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見逐’은 축출(逐出)을 당하다, 곧 쫓겨난다는 의미이다.
[한역의 직역]
달팽이 집
달팽이는 나면서부터 집이 한 채 있으니
어떤 사람 평생토록 없는 것보다 훨씬 낫네.
게다가 몸이 커지면 집 또한 커지니
이사며 매매는 필요로 하는 바 아니지.
뼛속까지 스며드는 엄동의 설한 속에서
좋겠구나, 쫓겨날 염려 전혀 없는 것이!
[한역노트]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위키 백과 사전』에서 달팽이 항목을 찾아보면, “복족류 연체동물 가운데 와선형의 패각을 가지고 육상, 수중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상당히 어려운 이 ‘정의’를 읽으면서 뜻을 바로 이해했다면 자연과학이나 자연과학 용어에 대한 이해가 어지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족류(腹足類)’라는 말은 ‘배가 발인 생명체 무리’라는 뜻인데, 간단히 배를 발처럼 움직이며 이동하는 생명체 정도로 이해해 두면 무방할 듯하다. 위의 시와 관련하여 우리가 달팽이의 정의 가운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와선형(渦旋形)의 패각(貝殼)’이라는 표현인데, 이것이 시인이 언급한 달팽이 ‘집’이다.
어느 시인은 달팽이 집을 평생토록 짊어지고 살아야 할 ‘등짐’으로 여겼지만, 김환영 시인은 이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등치(等値)시켜 영장류인 인간이 미물류인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계기로 삼았다. 짐작하건대 집과 관련한 서러움이나 괴로움 등이 없었다면 시인은 결코 이런 시를 짓지 못했을 것이다. 가령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태어난 이른바 ‘금수저’가 달팽이를 보고 집 없는 자들의 서러움 같은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저 유명한 프랑스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Escargot)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시인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고 또 고마운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생명체에게는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일과 더불어 휴식은 생명체들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지고 있으니 여타의 생명체들이 집을 만들거나 마련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수고는 면제를 받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달팽이의 집이 여타 생명체들의 집과 동일한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람의 경우, 집이 없으면 타인의 집에 세를 들어 살 수밖에 없다. 자기 집이 아니므로 이런저런 제약이 있을 것이고, 그 제약에 따른 불편 또한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이사’가 바로 그 감내해야 할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모든 이사가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셋집을 넓혀 가거나 더 좋은 셋집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라 셋집을 줄여 가거나 더 못한 셋집으로 가는 경우라면, 이사는 괴로움이거나 아픔이 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형편이 좋아 자기 집을 사고파는 경우라도 고통이 따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돈에 맞추자니 집이 초라하고, 마음에 맞추자니 주머니가 얄팍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엄동설한에 당하는 일이라면 그 고통은 배가되고 슬픔은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따스함이 그리워지고 간절한 때가 바로 지금과 같은 엄동설한이지 않은가!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음미하다가 문득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도 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영혼이 깃드는 집은 지금 어떠한가? 육신이 깃드는 집처럼 평수를 넓히고 이사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영혼이 깃드는 집이 없다면 육신이 깃드는 집이 없는 것보다 더 슬프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육신에게도 영혼에게도 집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합 6연 12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는데,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시의 구조 때문에 원시의 언어를 충실하게 직역하는 대신, 원시의 의미에 주안점을 두고 요약 번역을 하는 작업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시의 제2연과 제6연의 마지막 행처럼 시화를 포기한 시구도 있고, 역시의 제2구처럼 원시에는 없는 내용을 보충한 시구도 있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역시의 제2구는 원시의 제2연에서 그 외연을 확장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다만 시인의 용심처(用心處)로 여겨지는 제6연의 마지막 행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를 한역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을 선사했던 시구를, 한시와 한글시의 언어 생리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역자가 부득이하게 한역을 포기한 조치였음을 헤아려주면 감사하겠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을 하였으므로 압운자는 ‘無(무)’, ‘需(수)’, ‘虞(우)’가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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