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53개 동원해 3년간 주가조작…검찰에 고발
금융감독당국이 50개가 넘는 계좌로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켜 한 종목에 대해 3년4개월여간 주가조작을 해온 한 전업투자자를 적발해 검찰에 넘겼다. 당국은 국세청과의 협력을 통해 비상장법인 등에 대한 불공정 거래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27일 금융위원회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등과 불공정거래 조사·심리기관 협의회(조심협)를 열고 이같은 현안을 논의했다.

이날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는 전업투자자 A씨를 여러 레버리지 계좌를 동원해 B사에 대한 시세조종(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지난 10월 검찰에 넘겼다.

A씨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3년 4개월여에 걸쳐 B사 주식에 대해 반복적인 시세조종 주문을 제출하는 식으로 B사 주가를 띄웠다. B사는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 유통주식수가 적다는 점을 악용해 서로 다른 계좌에서 계속 고가로 주문을 내는 식으로 거래량과 주가가 꾸준히 점진적으로 오르는 것처럼 눈속임을 했다. 혐의기간 총거래일의 99%에 해당하는 거의 매 거래일마다 이상매매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본인, 가족, 지인 등 총 26명의 계좌 53개를 활용했다. 각 계좌로 신용융자, 주식담보대출, 차액결제거래(CFD) 등 쓸 수 있는 레버리지를 죄다 끌어 썼다. A씨는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높은 이자를 준다는 조건으로 주식매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사채자금도 활용했다.

A씨의 거래를 수상히 여긴 증권사가 수차례 불공정거래 예방 조치를 통보했으나 A씨는 이를 개의치않고 시세조종을 지속했다. B사는 작년 5월 금융당국이 대규모 하한가 사태 관련 CFD 계좌 집중점검 등에 나서면서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오자 주가가 하한가까지 폭락했다.

당국은 전환사채(CB) 콜옵션과 사모펀드를 이용한 신종 불공정거래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상장사 C사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D씨는 C사의 CB 전환가격 대비 주가가 두 배 이상 높고, C사의 바이오사업 중 임상3상 시험 성공이 예상된다는 점을 내부자로서 미리 안 채 CB 콜옵션을 권면금액의 1% 수준인 헐값으로 취득했다.

D씨는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와 짜고 수익차등형 사모펀드에 CB 콜옵션을 헐값에 매도한 뒤 해당 사모펀드에 차명으로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지분공시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운용사 대표도 이 사모펀드에 차명투자했다. D씨는 이후 사모펀드가 콜옵션을 행사해 전환사채를 매각하자 이익금을 분배받아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조심협은 "상장사나 금융회사 임직원이 우월적 지위로 사익을 추구해 일반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조심협은 최근 늘어나는 단주매매 혐의통보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알고리즘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종목에 단주매매를 반복해 매매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인을 유도하는 등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가 초단기 불공정 거래 특성을 반영한 초동 감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당국은 혐의통보 기준 등을 조정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국세청과 실무협의를 거쳐 비상장법인 정보 공유를 추진하기로 했다. 비상장법인은 상장사에 비해 정보가 제한적이다보니 금융당국만으로는 비상장법인 활용 불공정거래 사건 조사에 어려움이 컸다는 이유에서다.

이윤수 증선위 상임위원은 “불공정 거래 수법이 갈수록 복잡·다양화되는 등 진화하고 있다”며 “심리·조사기법을 꾸준히 혁신하면서 유관기관 간 협조체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