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올라도 떨어지고 내리면 더 떨어지는 건설주는 현재 역사적 저점을 갱신 중이다.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자 국가가 나서 '밸류업'에 시동을 걸었지만 건설주에겐 남일일 뿐이다. 증시에 상장된 건설사만 31곳에 달하는데, 한국거래소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엔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밸류업은 커녕 밸류'없'는 건설주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부동산 시장 불황 속에서도 홀로 잘나가는 건설사가 있다. 집 말고 다 짓기 때문에. 오일·가스 생산 공정, 정유, 석유화학, 에너지 전환 등 못 만드는 플랜트가 없다. 초기 설계부터 도맡아 해외 곳곳에서 꾸준히 수주 낭보를 울렸다. 계약만 했다하면 조단위를 넘기며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신규 수주고를 쌓을 전망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기다렸다. 이제는 줄 것이라고. 강산이 바뀌는 동안 주주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은 배당금을.

◆ 강산은 바뀌어도 그대로 무배당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E&A는 올해 신규 수주 14조원을 달성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주력 분야 중 하나인 화공 플랜트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우리나라 건설업 '제2의 중동붐'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사우디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공사에서만 9조원 가까운 일감을 따낸 영향이다. 사우디 외에도 카타르 라스라판 석유화학 프로젝트 등 굵직한 수주 성과를 거뒀다. 이에 주택시장 불확실성이 짙어지며 어닝 쇼크 수준의 성과를 낸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올해 실적도 선방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지난 2013년 이후 고수해 온 무배당 기조를 깨고 돈 보따리를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하지만 올해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재, 투자자들이 기다리던 주주환원 정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올해 초 2023년 연간 실적을 공개하면서 발표하기로 했다가 미청구 공사 증가, 현금 감소 등의 이유를 들며 미뤘다. 지난 5월에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를 통해 부채비율의 정상수준 회복,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등을 고려해 주주환원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연말이 됐다. 주주환원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데 삼성E&A의 주주환원 정책은 2010년 100만주 소각, 2013년 주당 3천원 배당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처럼 무배당을 고수한 배경에 대해 삼성E&A 관계자는 "2013년과 2015년 대규모 적자가 발생해 배당가능 이익에 도달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2019년까지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에도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와 건전한 재무구조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삼성E&A가 배당가능 이익을 충족시켰음에도 내부 유보를 택하며 주주들의 기대를 외면했을 때와 같은 답을 내놓은 것이다.

◆ 차고 넘치는 곳간, 안 푸나 못 푸나

삼성E&A의 배당재원은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지난 2015년 1조4천억원대 적자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한 영업이익은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할 만큼 성장했고, 올해도 9천억원대 이익이 예상된다. 1,9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은 반토막, 반의 반토막이 나더니 지난해 136%로 급감했고, 올해는 아예 100%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채비율은 기업의 총자산 중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로, 100% 미만이라면 빚 보다 자본이 많아 재무 상태가 건전하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사내유보금인 이익잉여금이 지난해 2조4,3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3조원 넘게 쌓일 전망이다. 경영 과정에서 자본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쌓아야 하는 적립금을 제외하더라도 배당할 수 있는 돈이 조단위를 훌쩍 웃돈다. 여기에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젝트 관련 선수금도 4천억원 들어왔다. 이에 따라 연결기준 순현금도 2조원 가까이로 늘어나게 됐다.

증권가에서는 삼성E&A의 곳간이 이처럼 풍부한데도 인심은 박한 이유를 향후 불투명한 성장성에서 찾고 있다. 같은 그룹사 내 삼성물산처럼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부진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삼성E&A의 매출은 지난해 기준 화공이 43%, 비화공은 57%를 차지한다. 반도체 설비 관련 매출은 비화공으로 잡힌다. 장윤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수주 이후 매출로 잡히기까지 시차가 화공보다 짧고 손실 리스크도 제한적인 그룹사 발주 비화공 물량이 내년에는 3~4조원 대로 감소하며 반도체 호황기였던 2020~2022년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삼성E&A의 실적을 끌어올린 화공 수주는 리스크가 크고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른다는 뜻이다. 수주를 따내 계약서까지 썼는데도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최근 삼성E&A는 2020년 1월 알제리에서 수주한 1조9천억원의 정유 프로젝트 공사의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미 조단위 손실을 겪어본 회사 입장에서는 곳간이 차고 넘쳐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기다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E&A에게 부족한 단 하나를 꼽는다면 주주환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국내외 정세가 불안해도 33조원 넘게 보유한 화공 일감이 동시다발적으로 달아나진 않을 테니까. 이에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선 주주환원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주주환원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갖추지 않은 삼성E&A의 목표주가는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삼성E&A의 목표주가를 3만3천원에서 2만9,500원으로 내렸고, KB증권도 3만1,500원에서 2만7,500원으로 낮춰 잡았다.

삼성E&A는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삼성E&A 관계자는 "주주가치제고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도 "배당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현금 3조 쌓인 삼성E&A, 11년째 배당 '침묵' [밸류'없' 건설주, '밸류업'할 결심④]
방서후기자 shb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