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랑의 바보들은 어떤 변명을 하나
순박한 시골 청년이 우연히 화살을 맞아 다친 두루미 한 마리를 발견해 정성껏 간호하고 살려줬다. 어느 날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청년을 찾아와 아내로 맞아달라고 부탁했고, 둘은 부부가 돼 행복하게 살았다. 가난한 살림을 돕기 위해 아내는 매일 밤 베를 짜겠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자신이 베를 짜는 동안 절대로 들여다봐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편은 몰래 방 안을 보는데, 그곳엔 인간이 아니라 두루미 한 마리가 자기 깃털을 뽑아 베를 짜고 있었다.

미국 인기 칼럼니스트 CJ 하우저는 에세이집 <두루미 아내>에 지금의 자신을 만든 사랑과 이별의 궤적들을 기록해놨다. 그는 일본 설화 ‘두루미 아내’를 인용해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이 마치 두루미 아내와 같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두루미인 걸 알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밤마다 부리로 깃털을 몽땅 뽑아냈다”는 것이다. 이 에세이집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사랑과 자기 발견에 대한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미국의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에 실려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 칼럼에서 출발했다. 파혼하고 열흘 뒤 소설 취재를 위해 두루미 탐구 답사를 떠난 저자는 외딴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사랑과 내면을 진솔하고 섬세하게 돌아보는 글을 썼다.

하우저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자 그 중심엔 사랑이 있었다고 말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오래된 소극장, 로봇 경진대회가 열린 마이애미주의 한 경기장, ‘오즈의 마법사’ 콘셉트 카지노 등 예측할 수 없는 장소들을 옮겨 가며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그 공간들은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무대가 되고, 저자는 그곳에서 상연되는 장면들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과오, 나도 모르는 새 새겨진 상처를 깨닫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와 감정들이지만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한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에세이집엔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일과 자기 정체성을 선택하는 일을 혼동하는 사람, 이 사람과 사귀어서 그를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애정에 굶주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욕망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상처 준 이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처럼, 누구든 마주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복잡한 감정들이 기록돼 있다. 비합리적인 선택의 밑바닥에 있는 마음, 무 자르듯 쳐낼 수 없는 욕망과 감정을 담아낸 에세이집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