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구 종말을 준비하는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
종말을 다룬 소설과 영화는 수없이 많다. 기후위기와 정체 모를 바이러스, 외계의 침공 등 상상력을 가미한 재난 상황은 인기 소재다. 그런데 재난 자체가 중요한 경우는 드물다. 궁지에 몰린 인간 군상의 어두운 내면이 진짜 주제인 작품이 대다수다.

최근 출간된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른 창작물과 차이가 있다면 실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 저널리스트인 마크 오코널이 세계 각지의 ‘프레퍼’를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다. 프레퍼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하 방공호를 건설하고, 비상식량을 한가득 마련하고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줄곧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원전 2000년께 마야 문명은 ‘먼지가 땅을 덮고, 질병이 세상에 가득한’ 끝을 예언했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대목도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요한묵시록으로 끝난다. 오늘날 프레퍼는 기후 변화와 핵무기 확산, 팬데믹, 민주주의 위기 등을 종말의 전조로 여긴다.

종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싹튼 건 2010년대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북극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TV 제작 과정에서 소모되는 광물과 연료도 동물 서식지 파괴에 일조하는 것 아닌가. ‘환경 파괴 없이는 환경 파괴를 알아채지 못하는’ 역설에 빠진 저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보게 됐다.

작가는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스코틀랜드 고지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최첨단 벙커, 유토피아로 꼽히는 뉴질랜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등지를 돌아봤다. 기후 변화를 두려워하는 환경론자가 많았다. 화성에서의 새 삶을 꿈꾸는 억만장자, ‘위대한 미국’을 그리워하는 우파 지지자 등 별난 인사도 있었다.

프레퍼를 움직이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욕망이다. 일부는 생존보다 사회가 박탈했다고 느끼는 강인한 남성성을 갈구했다. 사회 제도가 무너진 뒤 옛 수렵 사회의 ‘힘의 논리’가 재현된 세상을 고대한다는 얘기다. 일론 머스크 등 화성 이주 계획을 세우는 이들을 두고는 “과거 미국의 식민 팽창 역사를 재현해 다시금 ‘미국 신화’ 속에 살고 싶다는 환상이 드러난다”고 분석한다.

미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생존지침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레퍼의 행동 이면에 감춰진 의도를 분석한 심리학 교양서에 가깝다. 저자는 “이 책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쪽은 현재”라고 강조한다. 공상과학(SF) 장르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이미 일상에 스며든 종말의 기운을 경고하는 책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