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대행의 대행 체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국무위원들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야권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향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 부총리는 “치안 질서 등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헌정사상 첫 ‘대행의 대행 체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국무위원들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야권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향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 부총리는 “치안 질서 등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여야가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1차적인 이유는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상반된 입장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욱 장기적인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 여부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와 시점, 조기 대선과 관련한 전략적 유불리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차기 권력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양당의 권력 투쟁에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와 외교·안보 안정성이 희생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尹 탄핵, 마음 급한 민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6일 한 권한대행이 대국민 담화에서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며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20분 만에 탄핵안을 발의했다. 내년 1월 1일까지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한인 ‘김건희 특검법’과 ‘내란 특검법’을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정한 데드라인(24일)까지 공포하지 않은 것도 탄핵 이유로 꼽았다.

가능한 한 빨리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내려지길 바라는 민주당은 헌법재판관이 추가로 임명되는 것이 좋다.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데 현재의 ‘6인 체제’하에선 보수 성향인 정형식 재판관 한 명만 반대해도 탄핵소추안이 기각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 심리를 개시한 헌재가 6인 체제하에서 탄핵 심판까지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하지 않은 점도 불안 요소다. 이 같은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정원을 채울 필요가 있다.

이는 탄핵 이후 치러질 대선 전략으로도 연결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민주당은 대선 시점을 가능하면 앞당기려고 한다. 헌법재판관 3명이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4월 18일이면 그나마 있는 6명 중 2명의 재판관 임기가 추가로 만료된다. 이렇게 되면 심리가 가능한 최소 재판관 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탄핵 심리 자체가 중단된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결과가 대법원까지 유지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지더라도 이 대표는 출마할 수 없다. ‘친명 일극 체제’인 민주당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민주당의 입장이 확고한 만큼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이어받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한 한 권한대행의 입장을 유지한다면 민주당이 재차 탄핵 추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 부총리에게 촉구한다”며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상 책무이고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는 법률상 의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지연 작전

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 관련한 헌재의 심리가 미뤄질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 가능 여부, 권한대행 탄핵 의결정족수 등을 놓고 논란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이유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판결은 내년 4월, 조기 대선은 6월 이후까지 미루는 것이 여당의 목표”라고 전했다. 늦어도 4월 이후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선고 뒤 대선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더라도 2심까지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되면 이 대표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국정 혼란과 국가적 손실이 불보듯한데도 탄핵을 남발하는 건 조기 대선 정국을 유도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어버리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비판 여론을 최대한 잠재우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서라도 판결을 늦추는 것이 좋다. 정치권은 27일 최근 경제 상황을 놓고도 ‘네 탓 공방’을 벌였다. 권 원내대표는 “대외 신인도 저하를 방어해 온 한 권한대행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소추로 다시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 여당이)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 특검 거부로 경제를 박살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재영/설지연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