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모습. 국민연금공단 제공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모습. 국민연금공단 제공
36년 간 번 돈 기금운용으로 번 돈 675조2000억원. 연평균 수익률 6%. 올들어 9월까지 수익률 9.18%. 누구의 투자 실적일까요. 바로 우리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기금운용본부의 투자 실적입니다.

2017년 서울에서 전주로 이전한 뒤 매년 인력 유출 등 부정적인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최강의 투자기관으로 꼽힙니다.

9월말 기준 1146조원에 달하는 운용자산, 400여 명의 투자 전문가가 모인 이곳엔 매일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보내온 투자 제안서가 쌓입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칼라일, 세계적 금융 명가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사모펀드 EQT파트너스 등 유수의 기관들이 국민연금과 투자 정보를 교류하고, 자금을 위탁 받아 운용하고 있지요.

이처럼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국민연금의 자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는 금융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곳이라면 어느 정도 검증된 곳이라는 의미도 될 텐데요.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과연 어떨까요.

위험자산에 65%, 안전자산에 35%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는 단기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하려는 투자자들이 참고해볼만 합니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에서 수익성만큼 ‘안정성’을 중시합니다. 국민연금의 존재 목적이 젊은 시절 30~40년 간 보험료를 낸 이들이 은퇴 후 사망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서 발췌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서 발췌
국민연금은 지난 5월 향후 5년 간의 투자 방향이 담긴 '중기자산배분안'을 수립하면서 2025~2029년 5년간의 목표수익률을 5.4%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주식 55%, 채권 30%, 대체투자 15%로 포트폴리오를 짜기로 했습니다.

국민연금은 큰 틀에서 전체 자산의 65%를 '위험자산'에 나머지 35%를 '안전자산'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55%의 주식과 통상 중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대체투자 중 인프라 등 수익성보단 안정적 현금 흐름에 집중한 자산 일부를 뺀 10%를 더하면 65%가 되겠지요.

세부적으로 올해 말까지 자산군별 목표 비중은 △국내주식 14.9% △해외주식 35.9% △국내채권 26.5% △해외채권 8.0% △대체투자 14.7%로 결정했습니다. 5년 후엔 국내 주식에 15%를 해외 주식에 40%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채권은 국내가 20%, 해외가 10%입니다. 남은 15%를 차지하는 대체투자 가운데선 80% 이상을 해외 투자로 구성하게 됩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은 현재 약 50%대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2029년까진 60%대로 높이는 것이 국민연금의 계획입니다.

요약하면 '위험자산 65%, 안전자산 35%', '주식 55%, 채권 30%, 대체투자 15%' '해외 60%, 국내 40%'로 요약할 수 있겠지요.

이런 포트폴리오 구성은 지난 36년 간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수익률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1988~2023년 누적 수익률은 각각 국내 주식 6.53%, 해외 주식 11.04%, 국내 채권 3.61%, 해외 채권 4.02%, 대체투자 9.28%로 해외주식과 대체투자가 다른 자산군에 비해 높습니다.

미국 주식에 67%...특정 기업보단 '시장'을 산다

일반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기관이나 개인이더라도 초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접근 가능한 사모펀드,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투자를 따라가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그렇다보니 국민연금이 어떤 주식을 사는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서 발췌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서 발췌
국민연금 해외 투자의 주력인 해외 주식(2024년 9월말 기준 399조1000억원)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북미(66.7%)지역 입니다. 유럽(18.3%), 아시아태평양(8.2%), 일본(4.3%)이 뒤를 잇고 있다. 섹터별로는 정보기술(IT)이 21.8%로 가장 높고 금융(15.4%), 헬스케어(12.3%), 원자재·유틸리티·부동산(11.3%), 임의소비재(10.9%)등에 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종목별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3년말 기준으로 애플이 1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5위는 인베스코 MSCI USA ETF가, 6,8위를 각각 알파벳(구글) 클래스 A 및 C가, 7위는 메타가 차지했습니다. 미국 지수에 투자하는 ETF를 제외하곤 빅테크 위주의 구성입니다. 9위는 미국 최대의 의료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 10위는 덴마크의 대형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였습니다.

145조8000억원을 투자 중인 국내 시장에선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석유화학, 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고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시총 순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등이 톱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는 큰 틀에선 S&P500이나 나스닥100, 다우존스 등 미국의 지수를 중심으로 유럽,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시장 자체를 추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주식 직접운용(액티브) 비중은 50%에 달하는데요. 그럼에도 투자에서 '파격'보단 검증된 우량주를 중심으로 '적립식'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쌀 때 사고 비싸지면 파는' 기계적 원칙 준수


국민연금의 안정적 수익은 '쌀 때 사고 비싸지면 판다'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지킨 덕도 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은 5년 단위 중장기 전략적자산배분(SAA)과 1년 단위 전술적자산배분(TAA)의 2단계 자산배분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산군은 국내주식, 해외주식, 국내채권, 해외채권, 대체투자 등으로 구분하지요.

위에서 언급한 향후 5년 간의 자산 배분 비중이 바로 SAA입니다. 일시적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벗어날 수 있기에 국민연금은 자산별로 허용범위를 두고 그 안에 있을 땐 목표 비중으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주식 SAA 허용범위는 3%포인트입니다. 즉 올해 말까지 국내주식 목표 비중이 14.9%라면 11.9%까지 용인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추가적으로 TAA 허용범위까지 2%포인트가 있어 최대 5%포인트까지도 운용의 유연성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SAA 허용범위 안에서 포트폴리오가 관리되도록 조정(리밸런싱)을 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제도 하에서 운용이 이뤄지기에 국민연금은 '쌀 때 사고 비쌀 때 판다'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지키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국내 시장이 다른 시장에 비해 폭락해 전체 운용 자금 중 국내 주식 비중이 1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면 국민연금은 기계적으로 최소 11.9% 수준까지 국내주식 순매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시장이 회복돼 14.9%를 넘어서고, 나아가 17.9%를 초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매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이 재건축 과장에서 투자해 수익을 거둔 미국 뉴욕 원밴더빌트 빌딩 전경. 하인즈 제공
국민연금이 재건축 과장에서 투자해 수익을 거둔 미국 뉴욕 원밴더빌트 빌딩 전경. 하인즈 제공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자산을 통해서 최근 대형 기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가 어느 쪽인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모펀드, 상업용 빌딩 등 부동산 자산, 도로, 공항 등 인프라 자산 투자에 주력하던 국민연금은 운용 자산이 불어나면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대체투자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2020년을 전후로 운용사(GP) 지분 인수, 사모대출(PD), 산림 등 대체투자 자산군을 늘렸고, 최근엔 에너지와 천연자원, 사모사채, 세컨더리 크레딧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재건축을 통해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새로운 랜드마크 빌딩으로 부상한 원밴더빌트 빌딩 등 이미 완공된 자산을 사는 것이 아닌 개발 초기 단계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등 투자 전략도 다변화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 ESG투자를 확대시킨 주역이기도 한 만큼 국민연금의 ESG 투자 관련 정책을 눈여겨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