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해마다 발급하는 전문직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H1B 비자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진영에서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선 이후 트럼프 당선인 측근으로 자리 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기술기업 경영자 출신 인물은 전문 기술자의 유입 통로를 더욱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경한 이민 정책을 지지해온 공화당 일부 인사는 이런 주장이 미국 우선주의에 위배된다며 반대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일단 머스크 CEO 입장에 힘을 실어줬지만 논쟁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양측 간에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美 전문직 이민 놓고 트럼프 진영 분열

“이민자가 일자리 빼앗는다”

28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22일 차기 행정부의 과학기술정책실 인공지능(AI) 수석 정책 고문으로 임명한 인도계 정보기술(IT) 전문가 스리람 크리슈난은 “인재 확보를 위해 기술직 이민자의 영주권 발급 상한선을 없애는 건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SNS에 썼다.

공화당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문제 삼았다. 보수 성향 운동가 로라 루머는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공유하는 좌파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임명되고 있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오랜 측근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H1B 비자를 지지하는 실리콘밸리 인사를 ‘올리가르히’(oligarch·신흥 재벌)라고 비판하면서 “H1B 비자는 미국 시민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 외국에서 온 계약직 종업원에게 주고 돈을 덜 지불하려는 사기”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 경선 레이스를 펼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도 “우리는 (외국 노동력보다) 미국 노동력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전문직 이민 문 넓히자”

H1B는 공학, 수학, 물리, 의학 및 보건, 건축 등의 전문 직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이민 비자로, 최소 학사 학위 이상의 자격을 요구한다. 고용주 보증 아래 기본 3년간 체류가 허용되며 추후 연장 가능한 기간엔 제한이 있다. 발급되는 비자 수(연 8만5000개)와 국가별 쿼터가 정해져 있다.

미국 이공계(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직종에는 외국인 유입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이민위원회에 따르면 이공계 종사자 중 미국 출신은 2000년 83.6%에서 2019년 76.9%로 감소했고 그 자리를 외국 출신이 채웠다.

H1B 비자 소지자는 미국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지만 국가별로 수혜자 상한선이 있어 수년간 대기 기간이 필요하다. 이에 전문직 고급 인력에 한해서는 이런 제한을 없애 미국 이민 문을 넓히자는 것이 기술업계 주장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H1B 비자 724개를 신청해 승인받았다.

크리슈난은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 공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머스크 CEO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뒤 대학 때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넘어와 2002년 시민권을 얻었다.

머스크 CEO와 함께 차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공동수장으로 지명된 인도계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는 “최고의 기술 회사들이 미국인보다 외국에서 태어난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것은 미국인의 타고난 IQ 부족 때문이 아니다”며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자보다 졸업 파티 여왕을, (우등생인) 졸업생 대표보다 운동을 많이 하는 남학생을 더 찬양하는 문화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배출해내지 못한다”고 쓴소리했다.

트럼프 “난 H1B 비자 좋아해”

트럼프 당선인은 일단 머스크 CEO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날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늘 그 (H1B) 비자를 좋아했고 지지해왔다”며 “여러 차례 그것을 (사업 관련 외국인 고용에) 사용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요 취업비자 신청 거부 비율은 이전보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비자 문제는 머스크 CEO 같은 기술 리더들이 지금은 트럼프 인수위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트럼프 당선인 지지층 사이에서는 (그들이 내놓은 정책과 의견이) 논란이 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진단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