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중국 국적의 해상풍력발전기 설치선(WTIV) ‘순이1600호’가 정부 허가 없이 전남의 한 해상풍력 사업 현장에 무단 진입했다. 우리나라의 영해를 침범한 명백한 위법 행위다. 해상풍력 사업자 A사는 “우리나라에 WTIV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국내 에너지·건설 대기업으로부터 대형 WTIV 2척을 수주함에 따라 WTIV가 없어서 해상풍력 건설시장을 중국과 유럽에 내주는 일을 막을 수 있게 됐다.

○ 해상풍력 자립의 토대

29일 관계부처와 에너지·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7000억~8000억원 규모의 대형 WTIV를 한 척씩 수주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업계의 새로운 먹거리인 WTIV 시장 세계 1위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지금까지 각각 4척과 3척을 건조했다.

조선 분야에서는 세계 1위지만 한국 에너지·건설업계가 보유한 WTIV는 5~10MW급 중소형 발전기만 설치할 수 있는 선박 1척뿐이다. 해상풍력 발전기의 주류로 15MW급 대형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의 WTIV 미보유국으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발전을 14.3GW까지 늘리려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매년 1.5~2GW씩 설비를 늘려야 한다. WTIV가 없으면 해외 선사에서 빌려 써야 할 처지였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건조하는 WTIV는 15MW급 대형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1척당 연간 설치능력이 700~800MW에 달한다.

해상풍력 업계는 이번 수주에 대해 한국 해상풍력 시장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해상풍력 시장은 2030년 100조원(14.3GW), 2036년 182조원(26.7GW)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개발·운영-제조-금융’으로 이어지는 해상풍력 전 과정에서 시장을 해외에 내주고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국산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해상풍력 사업자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키우려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면 터빈을 제외한 해상풍력 제조산업에서는 한국 기업도 해볼 만 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해상풍력 건설 시장을 시작으로 개발·운영, 제조, 금융 등 나머지 부문에서도 한국 기업과 자본의 경쟁력을 키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 1척당 7000억 고부가가치 선박

WTIV를 건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 조선사밖에 없다. 1척당 가격이 7000억~8000억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2022~2023년만 해도 1척당 가격은 3000억~4000억원이었지만 수요 증가와 대형화로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고부가가치 선박의 대명사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가격(약 3800억원)과 비교해도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해외 선사로부터 WTIV를 빌리는 용선료도 1년 새 24% 올랐다. 해상풍력을 설치할 때는 해저 지형을 살펴야 때문에 국가안보와도 연관된다. 한국 조선사들이 대형 WTIV 수주 실적을 추가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 해상풍력 수요가 큰 나라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정영효/황정환/김형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