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대합실에서 탑승자 유가족과 취재진이 소방 당국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이날 낮 12시 30분께 전남소방본부 관계자가 브리핑을 통해 “남·여 승무원 1명씩 2명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 및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자 대합실은 통곡으로 가득 찼다.  최혁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대합실에서 탑승자 유가족과 취재진이 소방 당국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이날 낮 12시 30분께 전남소방본부 관계자가 브리핑을 통해 “남·여 승무원 1명씩 2명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 및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자 대합실은 통곡으로 가득 찼다. 최혁 기자
“상훈아, 상훈아.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사상 초유의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한국공항공사 사무실 앞에서 탑승자 A씨의 아버지는 발만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이곳에서 첫 공식 탑승자 명단이 공개되자 충격에 휩싸인 유가족은 저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숨만 쉬고 있어라, 제발”이라며 통곡했다.

“이대로는 못 보내” 유가족들 통곡

승무원 2명을 제외하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참사 소식에 유가족이 몰리면서 무안국제공항은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오후 2시 정부 브리핑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명단이 처음으로 공개되자 “아빠!” “아들아!” 등 유가족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사고 비행기 탑승자의 큰아버지 B씨는 “아직 사망자 명단에는 없지만 정말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사망 사실을 확인한 유가족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주저앉은 채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슬픔에 잠겼다.

소방 등 구조당국은 탑승자 시신을 현장 임시 영안소에 안치한 뒤 실종자 55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현재까지 시신이 수습돼 사망이 확인된 탑승자는 오후 4시18분 기준 127명(남성 59명, 여성 59명, 확인 불가 9명)이다. 소방 관계자는 “지문과 소지품 등을 통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고 있지만 화재로 사체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다. 이날 사고가 일어난 비행기는 콘크리트 담장과 충돌해 폭발이 일면서 그 전에 떨어져 나간 후미 쪽 승무원 2명을 제외한 모든 탑승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족들은 신원 확인이 느리게 진행되자 답답함을 토로했다. 소방 관계자들이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했으나 유가족들은 “그럼 먼저 확인된 신원이라도 공개해 달라”며 애원했다. 그러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생사를 알아야 병원을 찾지”라며 현장 관계자를 닦달하기도 했다.
"항공기 불타 생존 가능성 없다" 발표에…'눈물바다'된 가족 대기실

“성탄 여행 간다며 즐거워했는데…”

탑승자 181명 중 희생자 179명 대부분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단위 희생자가 적지 않은 이유다. 공항 도착 대기실 앞에서 가족의 귀국을 기다리던 C씨는 “크리스마스에 연말 휴가를 붙여 휴양지인 태국 방콕으로 즐겁게 떠나던 모습이 아직 선한데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방콕에서 오전 1시30분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에 오전 8시50분 도착할 예정이던 제주항공 7C2216편 승객 175명 중에는 여행사가 3박 5일 일정으로 모객한 크리스마스 여행객이 상당수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전남지역에서 태국 여행이나 골프 관광을 떠난 이도 많았다. 전남 장흥에서 공항으로 달려온 D씨는 “마을 친구들이 농한기에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며 “마을별로 누가 갔는지 아직 파악이 안 돼 발표만 기다릴 뿐”이라고 침통해했다.

사망자 중에는 공무 출장을 떠난 공무원도 상당수 포함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공무원 사망자는 전남교육청 5명, 목포시청 2명, 전남도청 2명 등이다.

공항 대기실에서는 당국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유가족은 이날 공항을 찾은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사고가 난 지 몇 시간이 지나도 사망자 신원이 즉각 공유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 지사는 “당국의 확인 절차가 이뤄지는 동안 유가족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고 장례 절차도 빠르게 밟을 것”이라고 했다.

무안=정희원/임동률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