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美 대통령 향년 100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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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향년 100세로 29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암 투병 등을 겪었으며 호스피스 돌봄을 받다가 이날 세상을 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유가족이 카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로절린 카터 여사가 먼저 세상을 뜬 데 이어 약 1년여 만이다.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는 해군장교 경험을 거쳐 가업인 땅콩농장을 물려받아 경영하다가 1962년에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70년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를 꺾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정치에 입문해 1976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재선에는 실패했다. 재임 기간에는 경제 침체, 높은 실업률,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공급 중단과 가격 폭등, 이란의 인질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해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파나마운하 조약 체결,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등의 성과를 거뒀다.
퇴임 후 40년 이상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공익을 위해 봉사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해비타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을 펼쳤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해비타트 현장을 방문했고, 2017년에는 허리케인 이재민을 돕자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대중 앞에 나섰다.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를 설립해 세계 각국에서 공정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했다. 백악관의 각종 기록물을 도서관 형태로 보관해 손실을 방지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국과도 오랜 관계를 맺었고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는 해군장교 경험을 거쳐 가업인 땅콩농장을 물려받아 경영하다가 1962년에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70년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를 꺾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정치에 입문해 1976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재선에는 실패했다. 재임 기간에는 경제 침체, 높은 실업률,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공급 중단과 가격 폭등, 이란의 인질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해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파나마운하 조약 체결,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등의 성과를 거뒀다.
퇴임 후 40년 이상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공익을 위해 봉사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해비타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을 펼쳤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해비타트 현장을 방문했고, 2017년에는 허리케인 이재민을 돕자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대중 앞에 나섰다.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를 설립해 세계 각국에서 공정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했다. 백악관의 각종 기록물을 도서관 형태로 보관해 손실을 방지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국과도 오랜 관계를 맺었고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