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억원을 받은 남자는 그 이전의 비루한 삶보다 더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 복수와 회한 그 중간 언저리에서 남자는 매일 그 만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할 그의 염원은 곧 현실이 된다. 455명이 눈 앞에서 처참히 죽어 나갔던 그 게임의 현장. 그는 어느 새 그 곳으로 다시 향하고 있다.

2021년에 공개되었던 넷플릭스 작품, <오징어 게임> 은 2019년에 공개되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기생충> 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일대 ‘현상’을 주도했던 시리즈 물이다.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를 통한) 한국영화의 작가주의와 한국영화산업의 위상을 드러냈다면 <오징어 게임>은 한국 드라마 시리즈의 출중한 컨셉과 완성도로 세계 시장을 주도한 결정적인 작품이다.

그 만으로도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린 <오징어 게임>이 공개 3년 만에 드디어 두번째 시리즈를 공개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이야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상금을 획득한 ‘성기훈’ (이정재) 이 게임을 주도하는 단체를 소탕하고 참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사선(死線)으로 다시 향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여러가지 요소로 전 세계의 뷰어를 확보한 시리즈지만 무엇보다 화제가 된 요인은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게임과 중심 캐릭터들이다. 특히 해외 관객들에게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놀이들, 예컨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를 포함한 한국의 전통 놀이는 드라마가 전하는 이야기 이상으로 인기를 모았던 ‘관전 포인트’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각 에피소드의 중심이 되었던 게임 참가자들, 즉 역대급 빌런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장덕수’ (허성태) 그리고 장덕수 캐릭터 만큼이나 악랄한 그의 연인 아닌 연인, ‘미녀’ (김주령) 는 성기훈 이상으로 강렬한 리드를 보여준 캐릭터들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즌 2의 완성도는 전편의 엄청난 성취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캐릭터 구성은 관습적이거나 과하다. 그중 전편의 악당, 장덕수의 자리로 고안된 듯한 새로운 빌런이자 마약 중독자인 래퍼, ‘타노스’(최승현, ‘탑’)는 시종일관 만화적인 연기와 행동들로 등장한다.

마약으로 연명한다는 설정의 캐릭터라는 것을 인지하고 보더라도 그의 명분 없는 악행과 그것을 넘어서는 불안한 연기 톤은 이번 시리즈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전편의 ‘미녀’를 떠올리게 하는 무당 ‘선녀’ (채국희) 도 마찬가지다. ‘선녀’는 악을 위한 악으로 존재할 뿐, 이야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소품으로 머문다.

단선적인 캐릭터의 이슈는 빌런이 아닌 선한 캐릭터의 빌드 업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다. 딸의 수술비를 구해야 하는 아버지, ‘경석’ (이진욱) 그리고 아들의 도박 빚을 갚아주기 위해 게임에 뛰어 든 노모, ‘금자’ (강애심) 는 살벌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매번 등장하는 신파적 카타르시스의 주체들이다. 다시 말해 이번 시리즈의 캐릭터들은 전편을 반복하거나 그 만도 못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성과 그에 따른 지극히 뻔한 설정들로 귀결되는 것이다.

현재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해외 언론 조차 이번 시리즈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가 <오징어게임>을 죽였다” (Capitalism Killed Squid Game) 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타임지의 기사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쇼가 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어버린 듯하다”는 논조의 비판을 실었다. 이어 “이번 시리즈의 현란한 세트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로의 <오징어 게임>의 위상을 과소평가 했다” 라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전편에 대한 보상으로 얻게 된 이번 시리즈의 엄청난 스케일도 그 내용의 빈약함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콜리더 역시 비슷한 맥락의 비판을 실었다. 콜리더의 에디터 테레스 락슨은 이번 시리즈가 ”새로운 캐릭터와 게임으로 화려하게 귀환했지만 전편의 관습과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Squid Game's Overreliance on Tropes and Archetypes Weakens the Show)” 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해서가 아닌 단순히 구색으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이번 시리즈의 ‘선녀’ 와 ‘경석’은 정확히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현재와 같은 불황기에 탄생한 ‘귀한’ 작품인 만큼, 관객과 산업 관계자 모두에게는 기대도 설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이번 시리즈는 세 번째 이야기를 암시하고 막을 내렸다. 이제는 내년에 찾아올 이 이야기의 운명을, 조금은 침착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