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후학 양성에도 힘써
'한국인 최초 해외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한동일씨 별세(종합)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 한동일(韓東一)씨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종종 우리나라 '음악 신동 1호'로 불린 연주자다.

그는 연주를 듣고 감명한 주한미군 사령관의 도움을 받아 한국전쟁 직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리벤트리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해 한국인 최초 해외 콩쿠르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교회 찬양대 지휘자였고 후일 서울관현악단(현 서울시향)의 팀파니 연주자가 된 아버지(한인환<韓麟桓>)의 영향으로 세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1946년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 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매일 김성복(전 이화여대 피아노과 교수), 이애내(숙명여대 음대 초대 학장), 신재덕(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 등 피아니스트들의 교습을 받았다.

고인은 "모두 아버지의 친구였다"며 "그분들은 돈도 받지 않고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줬다"고 회고했다.

노래를 들으면 바로 피아노로 옮겨 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 피아노 연주를 중단해야 하기도 했다.

8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했다.

1953년 10월 혜화동에 있던 미 제5공군사령부 강당에 있던 피아노로 연습하는 걸 본 사무엘 앤더슨(1905∼1982) 주한미군 사령관이 고인의 한국과 일본 내 미군기지 순회 연주회까지 열어가며 모금한 돈으로 1954년 6월 1일 앤더슨 중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병역 미필자의 해외 출국을 엄격히 금지하던 시절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1954년 7월 25일에는 CBS TV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여 한국에서 온 피아노 신동으로 소개되었다.


1954년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해 줄리아드에서 학사를 거쳐 1968년 석사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다.

1958년 6월에는 극동지역 순회공연에 올라 하와이와 일본을 거쳐 귀국 독주회를 열었고, 1962년에는 존 F. 존 F.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했다.

1965년 10월27일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심사위원장이었던 제24회 리벤트리트(Leventritt)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으로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입상자가 되었다.

1973년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

고인은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1969년 가을부터 학생을 가르쳤고, 이후 37년 동안 텍사스 주립대, 일리노이 주립대, 보스턴 음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201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으며, 울산대학교·순천대학교에서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최근까지도 연주 활동을 이어왔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고인에 대해 "우리나라가 소위 말하는 피아노 강국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것에 있어 가장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최초로 우리나라를 알리기 시작하신 분이고, 그런 분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 총장은 "특히 그런 큰 연주자가 되면 후배나 학생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는데 후배와 제자들에게 너무나 헌신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내년 1월 1일 마련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