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김수한 입으로 산다'…야당史 최고의 대변인으로 활약
1980년 계엄사, 강제연행·불법구금 탄압…'신군부 인권침해 피해자'로 인정받아
한일 민간외교관 역할도…與 "'수처작주' 좌우명 삼고 정치사에 큰 족적"
'YS 동지·원조 명대변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 별세…향년 96세(종합2보)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30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서, 상도동계 정치 원로인 고인은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YS와 인연을 맺은 뒤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다.

고인은 7대 국회를 시작으로 6선 의원을 지냈고, 15대 국회 전반기인 1996∼1998년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1957년 민주혁신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에 입문한 김 전 의장은 민주당 정책위원장, 대일(對日)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 대변인, 신한당 대변인 등을 거쳐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이후 8·9·10·12·15대까지 서울 영등포을과 관악 지역구를 기반으로 6선 의원을 지냈다.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관악에서 약 22만표를 획득해 당시 전국 최다득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5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을 맡았고 1998년 의장으로서 국회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고인은 4선 의원이던 1980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강제 연행돼 한 달여간 불법 구금되는 정치적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 김 전 의장은 신군부의 강압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아내 재산까지 헌납한 뒤에야 석방됐는데 올 3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고인을 인권침해 피해자로 인정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신한당에 이어 신민당에서 4차례나 대변인을 맡는 등 7년 8개월간 대변인을 지냈고, 야당사 '최고의 명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법안 편법 처리를 일컫는 '날치기'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야당은 김수한의 입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조 명대변인으로 통했던 그는 6선을 끝으로 의원 생활을 마무리한 뒤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을 맡아 민간외교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5년 YS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맡았으며 이후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헌정회 원로회의장,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의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남 김성동 씨, 김숙향 전 개혁신당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 등 2남 4녀가 있다.

김성동 전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국회의장을 역임하셨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으셨고 정계 원로로서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

'국민의 대변인'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크셨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고인께서는 어디서든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의미의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좌우명으로 삼고 현대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며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내달 3일,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

'YS 동지·원조 명대변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 별세…향년 96세(종합2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