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영화시장의 승자는 작가주의 색채 '장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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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 영화시장 결산
화제작·기대작 만족스런 성과 못내지만
코미디 <핸섬가이즈>, 오컬트 <파묘>
장르적 정체성 분명한 영화에 관객들 호응
화제작·기대작 만족스런 성과 못내지만
코미디 <핸섬가이즈>, 오컬트 <파묘>
장르적 정체성 분명한 영화에 관객들 호응
매년 한국영화의 결산 기사를 써오고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슬픈 모멘텀이 아닌가 싶다. 몇몇 귀한 배우들을 잃었고, 화제작·기대작들이 박스오피스에서 맥 없이 무너졌으며, 메이저 마켓 중 하나인 연말 시장은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전복시킨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더더욱 쓸쓸한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현재 시점(개봉 6일차)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한 대작 <하얼빈> (우민호)은 관객수 238만명을 기록했지만 궁극적으로 손익분기점인 680만명을 달성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2024년의 마지막 영화인 <보고타> (김성제)는 스케일이 다소 작은 350만명 정도의 손익분기를 목표로 해야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언론배급 시사의 반응을 고려하건대, 아마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는 힘들 듯 하다. 2024년의 한국영화(상업영화 기준)는 <외계인 2> (최동훈)로 한 해의 장(場)이 시작되었다. 손익분기점 730만명에서 한참을 못 미치는 흥행 성적 154만을 기록했던 전편은 흥행 참사에 가까운 재앙이었다. 전편에 실망했던 관객들이 속편에 더 큰 기대를 할리 없었다. 예상대로 속편은 그 보다도 낮은 143만으로 <외계인> 시리즈는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큼 손실이 큰 프로젝트로 남았다. 이어 2월에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오컬트라는 장르적인 니치(niche)에도 천만을 넘어서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묘>가 일으킨 ‘성황’이 모든 한국영화에 똑같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이후 개봉했던 주목할 만한 성공작들이라면 <시민 덕희> (박영주)와 <소풍> (김용균)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두개의 이야기지만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제작비 70억 미만의 중저예산 프로젝트라는 점과 각각, 보이스피싱을 이슈로 하는 여성서사, 노인 존엄사라는 오리지널하면서도 일상과 맞닿아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두 영화 모두 스케일보다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빛나는 작품들이다. 이어 4월에 개봉한 <범죄도시4>는 예상대로 무리 없이 천만을 넘어섰다. 전작의 관습을 답습하고, 설정이 반복된다는 비평에도 영화는 전작들의 기록까지 갱신하며 개봉 22일만에 천만을 달성했다. 이 두 작품의 연 이은 흥행은 극장산업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선물 같은 이벤트였다. CGV 관계자는 두 영화의 흥행으로 장기화 되었던 불황에서의 손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상반기의 가장 큰 흥행작이었던 이 두 작품 이후로 주목할 만한 대작은(흥행기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752만명을 기록했던 <베테랑2> (류승완)를 제외하고 제작비 대비 내실 있는 성과를 냈던 작품들을 언급하자면 <핸섬가이즈> (남동협), <파일럿> (김한결), <사랑의 하츄핑> (김수훈, 애니메이션) 정도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시점 <보고타>는 관객을 만나기 전이고, <하얼빈>은 나름 순항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손익분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낙관적인 기대를 하긴 힘든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분석하자면 올해 한국영화시장은 실패했다. 관객 몰이에도 실패했고, 영화사적으로, 혹은 작가적인 관점에서 격변을 일으킬만한 대단한 작품을 탄생시키지도 못했다. 주목할만한 신인 감독과 데뷔작들이 있었지만 기존의 관습적인 상업영화들에서 약간은 벗어난 흥미로운 작품들 정도라고 평가할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들의 성취, 작품들의 경향은 마땅히 조명되고, 치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올해의 승자는 스케일이 아니라 컨셉으로 승부한 ‘장르 영화’들, 그리고 작가주의가 분명한 영화들이다. 동명의 캐나다 작품을 리메이크한 <핸섬가이즈>는 수려한 코미디로, 천만이라는 전설의 숫자를 부활시킨 <파묘>는 오컬트로, 관객들은 장르적 정체성이 분명하고 다소 매니악 하더라도 (산업이 아닌 작가/감독에 의해 탄생한) 아이디어와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영화들에 호응을 보낸 것이다. 이는 장르 영화의 강국으로 입지를 알린 한국영화에 있어서 큰 변화로 인지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트렌드다. 2000년대 초반 'K-무비' 라는 키워드가 전 세게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와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그리고 <장화, 홍련> (김지운, 2003) 이 유수의 해외 영화제와 영화산업에서 어필을 하면서 얻어진 타이틀이자 영예였다.
최근 한국영화가 드러낸 적신호 중 하나는 (국내 시장의 불황과 함께)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와 작가주의를 주목하는 해외 영화제의 섹션에서 연이어 낙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의 경쟁 섹션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올해 한국영화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혹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큰 프로젝트를 한 줄 요약한다면 작가주의적 색채가 분명한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난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힘, 아니 좋은 영화의 힘을 믿는다. 이 작은 영화들이 어떻게든 관객을 만나고 그들이 전해야 할 이야기를 전달했듯이, 좋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다시 소환할 것이다. 다만, 좋은 이야기와 영화의 창작은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신중하고, 치밀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현재 시점(개봉 6일차)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한 대작 <하얼빈> (우민호)은 관객수 238만명을 기록했지만 궁극적으로 손익분기점인 680만명을 달성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2024년의 마지막 영화인 <보고타> (김성제)는 스케일이 다소 작은 350만명 정도의 손익분기를 목표로 해야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언론배급 시사의 반응을 고려하건대, 아마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는 힘들 듯 하다. 2024년의 한국영화(상업영화 기준)는 <외계인 2> (최동훈)로 한 해의 장(場)이 시작되었다. 손익분기점 730만명에서 한참을 못 미치는 흥행 성적 154만을 기록했던 전편은 흥행 참사에 가까운 재앙이었다. 전편에 실망했던 관객들이 속편에 더 큰 기대를 할리 없었다. 예상대로 속편은 그 보다도 낮은 143만으로 <외계인> 시리즈는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큼 손실이 큰 프로젝트로 남았다. 이어 2월에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오컬트라는 장르적인 니치(niche)에도 천만을 넘어서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묘>가 일으킨 ‘성황’이 모든 한국영화에 똑같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이후 개봉했던 주목할 만한 성공작들이라면 <시민 덕희> (박영주)와 <소풍> (김용균)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두개의 이야기지만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제작비 70억 미만의 중저예산 프로젝트라는 점과 각각, 보이스피싱을 이슈로 하는 여성서사, 노인 존엄사라는 오리지널하면서도 일상과 맞닿아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두 영화 모두 스케일보다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빛나는 작품들이다. 이어 4월에 개봉한 <범죄도시4>는 예상대로 무리 없이 천만을 넘어섰다. 전작의 관습을 답습하고, 설정이 반복된다는 비평에도 영화는 전작들의 기록까지 갱신하며 개봉 22일만에 천만을 달성했다. 이 두 작품의 연 이은 흥행은 극장산업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선물 같은 이벤트였다. CGV 관계자는 두 영화의 흥행으로 장기화 되었던 불황에서의 손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상반기의 가장 큰 흥행작이었던 이 두 작품 이후로 주목할 만한 대작은(흥행기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752만명을 기록했던 <베테랑2> (류승완)를 제외하고 제작비 대비 내실 있는 성과를 냈던 작품들을 언급하자면 <핸섬가이즈> (남동협), <파일럿> (김한결), <사랑의 하츄핑> (김수훈, 애니메이션) 정도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시점 <보고타>는 관객을 만나기 전이고, <하얼빈>은 나름 순항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손익분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낙관적인 기대를 하긴 힘든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분석하자면 올해 한국영화시장은 실패했다. 관객 몰이에도 실패했고, 영화사적으로, 혹은 작가적인 관점에서 격변을 일으킬만한 대단한 작품을 탄생시키지도 못했다. 주목할만한 신인 감독과 데뷔작들이 있었지만 기존의 관습적인 상업영화들에서 약간은 벗어난 흥미로운 작품들 정도라고 평가할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들의 성취, 작품들의 경향은 마땅히 조명되고, 치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올해의 승자는 스케일이 아니라 컨셉으로 승부한 ‘장르 영화’들, 그리고 작가주의가 분명한 영화들이다. 동명의 캐나다 작품을 리메이크한 <핸섬가이즈>는 수려한 코미디로, 천만이라는 전설의 숫자를 부활시킨 <파묘>는 오컬트로, 관객들은 장르적 정체성이 분명하고 다소 매니악 하더라도 (산업이 아닌 작가/감독에 의해 탄생한) 아이디어와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영화들에 호응을 보낸 것이다. 이는 장르 영화의 강국으로 입지를 알린 한국영화에 있어서 큰 변화로 인지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트렌드다. 2000년대 초반 'K-무비' 라는 키워드가 전 세게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와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그리고 <장화, 홍련> (김지운, 2003) 이 유수의 해외 영화제와 영화산업에서 어필을 하면서 얻어진 타이틀이자 영예였다.
최근 한국영화가 드러낸 적신호 중 하나는 (국내 시장의 불황과 함께)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와 작가주의를 주목하는 해외 영화제의 섹션에서 연이어 낙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의 경쟁 섹션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올해 한국영화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혹은 앞으로도 잠재력이 큰 프로젝트를 한 줄 요약한다면 작가주의적 색채가 분명한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난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힘, 아니 좋은 영화의 힘을 믿는다. 이 작은 영화들이 어떻게든 관객을 만나고 그들이 전해야 할 이야기를 전달했듯이, 좋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다시 소환할 것이다. 다만, 좋은 이야기와 영화의 창작은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신중하고, 치밀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