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햄릿과 돈키호테의 선택
12·3 비상계엄 사태는 그동안 대선 잠룡으로 꼽히던 현직 광역단체장에게도 거대한 여파를 몰고 왔다. 상식 밖이던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열흘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 절차가 개시되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들 단체장은 2026년 6월 말 임기가 끝난 뒤 재임 중 성과를 앞세워 2027년 3월 대선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엄 사태로 이 같은 계획은 무참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가시화되는 조기 대선

윤 대통령과 한배를 타고 있던 여당 소속 단체장들의 당혹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되면 나라가 망하고 윤석열이 되면 나라가 혼란해질 거라고 (이미 2021년에) 예견했다”며 “윤 정권과 차별화 시점은 4년 차 때부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일찍 와버렸다”고 토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당 모습은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포기한 정당처럼 보인다”며 “우리 당 소속인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 그로부터 비롯된 국제적 신인도 하락, 경제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두 단체장은 향후 조기 대선 참여 여부를 놓고서는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 시장은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장에 안 나가나”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반면 오 시장은 “고민이 깊다. 아직 말씀드릴 시기가 아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두 단체장의 상반된 정치 스타일과 과거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시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대선 당시 불리한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경남지사를 중도 사퇴한 뒤 여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나섰다. 특유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 빗대 ‘홍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유민주적 가치 회복하려면

반면 오 시장은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시장직에서 사임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 변호사 출신답게 치밀하고 꼼꼼한 일 처리와 마지막 순간까지 심사숙고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이반 투르게네프 작가는 에세이 ‘햄릿과 돈키호테’에서 인간 정신의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했다.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동명 작품에서 각각 따왔다. 투르게네프에 따르면 햄릿형은 사색적인 현실주의자지만 돈키호테형은 저돌적인 이상주의자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인간이 두 유형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다고 봤다. 오 시장은 햄릿형에, 홍 시장은 돈키호테형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두 유형의 공통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돈키호테와 햄릿은 둘 다 자유를 궁극적 이상으로 여긴다”며 “이들 두 영웅의 이상이야말로 수백 년간 그들이 인기를 누린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르네상스 후기인 1600년대 초반 두 걸작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려 한 비상계엄 사태를 넘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시대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