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 사고 이틀째인 30일. 유가족들이 모인 전남 무안국제공항 국제선 출발대기실 앞에서 탑승자 A씨의 어머니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사망자 신원 확인 전화를 받자마자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이날 오전 9시께부터 신원 확인이 완료된 사망자 보호자에게 연락이 속속 닿기 시작하자 공항 1~2층 대합실의 유가족 임시텐트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늦어지는 사망자 신원 확인

유가족들은 애타게 휴대폰을 붙잡고 사망자 신원이 확인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전남 경찰청은 지난 29일 사고 발생 3시간 만인 낮 12시께 DNA를 판독할 수 있는 DNA 신속 판독기 3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검안의와 보조 인력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30일 오전 11시 기준 아직 신원 확인이 안 된 사망자는 39명이다.

유가족들은 대부분 공항 1, 2층에 설치된 쉼터와 벤치에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유가족 B씨는 대합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1분 1초가 지옥 같다”고 흐느끼며 고개를 떨궜다. 일부 유가족은 “우리 아들 어디 있냐?”며 울부짖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문과 소지품 등을 통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고 있지만 폭발로 인한 화재로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당국이 전남 무안군 종합스포츠파크와 전남도청, 광주 5·18 민주광장 등 공항 인근 등 세 곳을 합동분향소로 일방적으로 정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제주항공 참사 유족 대표단 측은 “유족 대다수는 공항 1층에 (합동분향소를)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속속 전해지는 안타까운 사연들

미취학 아동을 포함한 학생들과 휴가를 간 일가족이 모두 희생되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 사고로 사망한 학생은 총 12명이다. 어린이집 1명, 초등학생 4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4명으로 각각 전남·광주·세종·경기·전북교육청 소속 학생이다.

연말을 맞아 여행에 나선 가족 단위 탑승객이 많았던 비행기에는 일가족이 모두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연도 적지 않았다. 프로야구팀 KIA 타이거즈의 홍보 매니저로 근무하는 C씨는 지난 15일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코로나19 당시 가지 못한 신혼여행을 대신해 여행을 떠났다가 온 가족이 귀국길에 변을 당했다. 그의 만 3세 아들은 이번 사고의 가장 어린 희생자로 기록됐다. 수능을 끝낸 고3 아들을 둔 삼부자 희생자와 결혼 40년 만의 첫 해외여행에서 변을 당한 부부도 있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의 대다수는 광주·전남 지역민이었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이번 참사로 숨진 승객 175명의 거주지는 광주 81명, 전남 76명, 전북 6명, 경기 4명, 서울 3명, 제주 2명, 경남·충남·태국 각 1명이었다. 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주소를 나주에 두고 있어 전남도민으로 분류됐다.

전국 곳곳에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무안 스포츠파크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포함해 서울 광주 울산 등 전국 17개 시·도에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이날 광주 합동분향소에는 사고 비행기에 탑승한 중학교 3학년 D양을 떠나보낸 친구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D양의 친구 E양은 “중학교도 같이 졸업하고, 졸업사진도 같이 찍기로 했는데 이렇게 사고를 당할지 몰랐다”며 “당연하게 생각한 사소한 일상들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만 같다”며 울먹였다.

무안=정희원/임동률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