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Empty Korea(텅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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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장관이 되려면 한국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지명했다고 무조건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아니다. 국회 동의 여부가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상원의원 만장일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어렵게 임명된 만큼 고위직 탄핵도 쉽지 않다. 한국에선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해당 장관은 곧바로 직무정지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상원이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을 최종 가결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해당 장관은 직을 유지한다. 탄핵 절차가 이렇게 까다롭다 보니 미국 역사상 최종 탄핵당한 장관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장관 대행으로 일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비해 요즘 한국은 ‘대행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29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3건이 통과됐다. 수장 탄핵안이 가결된 법무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서울중앙지검 등이 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탄핵 여파는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재난 대응의 핵심 라인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4명이 모두 대행인 데다, 대통령 권한 ‘대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역할까지 맡았다. 무안공항 등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자리 역시 대행 체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임 사장이 올 4월 사임한 뒤 8개월째 후임 인선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비슷한 이유로 정부기관과 공기업 327곳 중 30여 곳의 사장이 공석이다.
외교가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탄핵 정국 이후 인사 절차가 중단돼 이탈리아 대사와 캐나다 토론토 총영사 등 8개국의 재외공관장이 비어 있다. 기존 대사가 곧 귀임하는 중국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9개국이다. 헌법재판소도 3명의 재판관이 여야 정쟁으로 공석이며, 내년 4월엔 자칫 4인 체제까지 우려되고 있다. 국가 운영의 필수 보직에 공석이 너무 많아 ‘텅 빈 한국’(Empty Korea)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오명이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
어렵게 임명된 만큼 고위직 탄핵도 쉽지 않다. 한국에선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해당 장관은 곧바로 직무정지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상원이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을 최종 가결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해당 장관은 직을 유지한다. 탄핵 절차가 이렇게 까다롭다 보니 미국 역사상 최종 탄핵당한 장관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장관 대행으로 일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비해 요즘 한국은 ‘대행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29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3건이 통과됐다. 수장 탄핵안이 가결된 법무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서울중앙지검 등이 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탄핵 여파는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재난 대응의 핵심 라인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4명이 모두 대행인 데다, 대통령 권한 ‘대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역할까지 맡았다. 무안공항 등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자리 역시 대행 체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임 사장이 올 4월 사임한 뒤 8개월째 후임 인선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비슷한 이유로 정부기관과 공기업 327곳 중 30여 곳의 사장이 공석이다.
외교가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탄핵 정국 이후 인사 절차가 중단돼 이탈리아 대사와 캐나다 토론토 총영사 등 8개국의 재외공관장이 비어 있다. 기존 대사가 곧 귀임하는 중국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9개국이다. 헌법재판소도 3명의 재판관이 여야 정쟁으로 공석이며, 내년 4월엔 자칫 4인 체제까지 우려되고 있다. 국가 운영의 필수 보직에 공석이 너무 많아 ‘텅 빈 한국’(Empty Korea)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오명이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