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평등원칙 따라 '선택적 장래효' 내놨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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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구자형 변호사의 '이슈 플러스'
구자형 변호사의 '이슈 플러스'
대법원은 지난 12월 19일 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고정성’을 삭제하면서, 새로운 법리는 원칙적으로 장래효를 가지지만 해당사건 및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병행사건에는 소급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판결,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3다302838 판결). 대법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래효를 채택한 판결 중 병행사건에까지 소급효가 미치도록 ‘선택적’ 장래효를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법원이 2013. 12. 18. 선고한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2013년 전합판결’) 이후 불과 11년 만에 크게 법리를 변경하면서, 그 적용 시점에 대해서도 새로운 법리를 들고 나오게 된 것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장래효의 근거가 무엇일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하면서 ‘고정성’이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정작 장래효의 법령상 근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판례변경에는 소급효가 있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은 법의 창조가 아니라 법의 발견이기 때문에, 판례의 변경은 과거부터 존재하던 법에 관하여 단지 해석을 정정하는 것이고, 이미 존재하던 법에 대해 적어도 지금의 생각으로는 ‘올바른’ 해석을 적용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판례 중에서 판례 변경의 소급효가 직접 언급된 경우가 많지는 않으나, 이는 오히려 판례 변경이 소급효를 가진다는 점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기도 하다.
과거 대법원이 장래효를 채택한 사건들이 일부 있으나 그 중 몇 건은 관습법의 내용이 문제된 사건으로서 관습법 자체가 변경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종중의 구성원에 관한 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제사 주재자에 대한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렇다면 순수한 판례변경에 장래효를 인정한 사건은 더욱 드물다. 결국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확립된 판례가 장래효의 근거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이 ‘선택적’ 장래효를 인정한 이유는 조금 더 어렵다. 대법원은 ‘평등원칙의 요청’에 따라 현재 법원에 소송이 계속되어 있는 사건에는 소급효를 인정한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불과 11년전 선고된 2013년 전합판결을 신뢰하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심지어 현재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과 유사한 시점에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법원이 2013년 전합판결에 근거하여 신속히 소송을 진행한 결과 이미 종결, 확정된 판결이 수없이 많다.
가령 Y사 통상임금소송은 2014년 제기되었는데, 1, 2심 모두 청구를 기각하였고, 대법원도 2020. 4. 29. 선고를 통해 ‘지급일 현재 재직하고 있는 근무자에 한하여만 지급되는 상여금은 고정성을 갖추지 못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2017다247602 판결). 반면, 2015년 제기된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은 1심에서 청구가 기각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선언하여 판결이 변경된 이후,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속되어 있다.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바로는 두 사건에서 당사자의 주장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왜 장래효를 채택해야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법에는 갑작스러운 판례 변경 시 기존의 거래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신뢰보호 수단이 별로 발전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 형사법에서 판례변경 시 금지착오를 원용하는 법리가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는 반면, 민사나 행정 사건에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인정된 법리를 생각하기 힘들다.
2013년 전합판결은 통상임금에 관한 판례법리를 변경하면서, 다만 이에 근거하여 기존의 노사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경우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하였으나, 이러한 법리는 널리 인정되지 못하였다. 기업들은 이후 제기된 수많은 통상임금 사건에서 거의 예외 없이 신의칙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에서 인정된 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2013년 전합판결의 원래 의도는 신의칙을 통한 소급효 제한에 가까웠다고 생각되지만, 이후 판결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한편, 위 2013년 전합판결의 보충의견은 ‘보충적 계약해석’을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계약당사자 쌍방이 계약의 전제나 기초가 되는 사항에 관하여 같은 내용으로 착오한 경우, 당사자가 그 착오가 없을 때에 약정하였을 내용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할 수 있다는 법리를 단체협약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통상임금 사안에서 단체협약의 보충적 해석에 관한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대법원은 (심리속행 판결임에도) 아무런 설명 없이 이를 기각하는데 그쳤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다212262 판결).
우리 법원은 ‘사정변경의 원칙’ 인정에도 인색하다.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법률행위의 기초 사정에 중대한 변경이 발생한 경우 법률행위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계약을 해제, 해지할 수 있다는 법리이다. 과거 일정기간 동안의 하급심 판결 중 사정변경의 원칙이 언급된 사례를 전수 조사한 바 있었는데, 당사자가 사정변경을 주장한 50여 건 중 실제로 인정된 것이 2건 정도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는 리비아 내전으로 리비아지역 공사 하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7. 13. 선고 2017가합545813 판결). 결국 전쟁 정도의 극단적인 사정 변경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 경우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법원이 2013년 전합판결 이후 불과 11년만에 전원합의체 판례를 변경하게 되면서 법률관계의 안정을 위해 부득이 장래효를 선택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판례를 변경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을지, 혹은 이번 기회에 판례 변경 시 신뢰보호를 위한 수단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을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장래효의 근거가 무엇일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 요건을 폐기하면서 ‘고정성’이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정작 장래효의 법령상 근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판례변경에는 소급효가 있는 것이 원칙이다. 재판은 법의 창조가 아니라 법의 발견이기 때문에, 판례의 변경은 과거부터 존재하던 법에 관하여 단지 해석을 정정하는 것이고, 이미 존재하던 법에 대해 적어도 지금의 생각으로는 ‘올바른’ 해석을 적용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판례 중에서 판례 변경의 소급효가 직접 언급된 경우가 많지는 않으나, 이는 오히려 판례 변경이 소급효를 가진다는 점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기도 하다.
과거 대법원이 장래효를 채택한 사건들이 일부 있으나 그 중 몇 건은 관습법의 내용이 문제된 사건으로서 관습법 자체가 변경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종중의 구성원에 관한 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제사 주재자에 대한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렇다면 순수한 판례변경에 장래효를 인정한 사건은 더욱 드물다. 결국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확립된 판례가 장래효의 근거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이 ‘선택적’ 장래효를 인정한 이유는 조금 더 어렵다. 대법원은 ‘평등원칙의 요청’에 따라 현재 법원에 소송이 계속되어 있는 사건에는 소급효를 인정한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불과 11년전 선고된 2013년 전합판결을 신뢰하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심지어 현재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과 유사한 시점에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법원이 2013년 전합판결에 근거하여 신속히 소송을 진행한 결과 이미 종결, 확정된 판결이 수없이 많다.
가령 Y사 통상임금소송은 2014년 제기되었는데, 1, 2심 모두 청구를 기각하였고, 대법원도 2020. 4. 29. 선고를 통해 ‘지급일 현재 재직하고 있는 근무자에 한하여만 지급되는 상여금은 고정성을 갖추지 못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2017다247602 판결). 반면, 2015년 제기된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은 1심에서 청구가 기각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선언하여 판결이 변경된 이후,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속되어 있다.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바로는 두 사건에서 당사자의 주장에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왜 장래효를 채택해야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법에는 갑작스러운 판례 변경 시 기존의 거래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신뢰보호 수단이 별로 발전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 형사법에서 판례변경 시 금지착오를 원용하는 법리가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는 반면, 민사나 행정 사건에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인정된 법리를 생각하기 힘들다.
2013년 전합판결은 통상임금에 관한 판례법리를 변경하면서, 다만 이에 근거하여 기존의 노사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경우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하였으나, 이러한 법리는 널리 인정되지 못하였다. 기업들은 이후 제기된 수많은 통상임금 사건에서 거의 예외 없이 신의칙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에서 인정된 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2013년 전합판결의 원래 의도는 신의칙을 통한 소급효 제한에 가까웠다고 생각되지만, 이후 판결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한편, 위 2013년 전합판결의 보충의견은 ‘보충적 계약해석’을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계약당사자 쌍방이 계약의 전제나 기초가 되는 사항에 관하여 같은 내용으로 착오한 경우, 당사자가 그 착오가 없을 때에 약정하였을 내용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할 수 있다는 법리를 단체협약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통상임금 사안에서 단체협약의 보충적 해석에 관한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대법원은 (심리속행 판결임에도) 아무런 설명 없이 이를 기각하는데 그쳤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다212262 판결).
우리 법원은 ‘사정변경의 원칙’ 인정에도 인색하다.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법률행위의 기초 사정에 중대한 변경이 발생한 경우 법률행위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계약을 해제, 해지할 수 있다는 법리이다. 과거 일정기간 동안의 하급심 판결 중 사정변경의 원칙이 언급된 사례를 전수 조사한 바 있었는데, 당사자가 사정변경을 주장한 50여 건 중 실제로 인정된 것이 2건 정도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는 리비아 내전으로 리비아지역 공사 하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7. 13. 선고 2017가합545813 판결). 결국 전쟁 정도의 극단적인 사정 변경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 경우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법원이 2013년 전합판결 이후 불과 11년만에 전원합의체 판례를 변경하게 되면서 법률관계의 안정을 위해 부득이 장래효를 선택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판례를 변경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을지, 혹은 이번 기회에 판례 변경 시 신뢰보호를 위한 수단을 법원이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을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