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잡식동물이 되어야 할 한국
“세계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초식동물로 남는다면 육식동물이 이길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시장이 될 것이다.” 2024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지도자들에게 한 말이다.

마크롱의 말처럼 세계는 달라졌다. 지난 수십 년간 번성했던 자유무역과 제한적 정부 개입,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은 국가 보조금, 보호주의, 통화관리, 공공조달 등을 앞세워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반도체 등의 산업을 집중 육성해 비교우위에 기반한 무역질서를 흔들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는 관세와 수출 통제를 통해 이에 대응했다. 이어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법을 제정해 주요 산업의 자국화를 가속화했다. 세계 경제 1, 2위인 미국과 중국의 보호주의 속에서 세계무역기구(WTO)는 사실상 역할을 상실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이런 흐름은 영구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상주의의 재림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는 이를 ‘현대 중상주의(Modern Mercantilism)’라고 정의한다. 16~18세기 유럽에서 번진 중상주의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은 국가 주도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무역을 통제하며 식민지를 개척해 국부를 축적했다. 브리지워터는 현대 중상주의를 △국가가 경제를 조정하며 국부와 국력을 증진한다 △무역수지는 부와 힘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무역적자를 피해야 한다 △산업 정책은 자립과 안보를 위해 활용된다 △국익을 위해 국내 기업 챔피언은 보호받는다 등 네 가지 특징으로 요약한다. 문제는 이런 중상주의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며, 강한 전염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중국에 이어 미국이 응전에 나섰고, 유럽도 대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시장은 점점 관세, 산업정책, 수출 통제로 대체될 것이며 이는 각국 간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유럽 중상주의 시대에도 군사적 충돌이 빈번했다.

월가는 자유무역과 세계화 속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을 이런 변화에서 가장 취약할 수 있는 나라 중 한 곳으로 꼽는다. 그런데도 한국은 정치적 진흙탕에 빠져 있다. 여당은 비상계엄 선언 이후 자멸하고 있고,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며 국정을 멈춰 세웠다.

세계 흐름 아는 리더 있어야

세계 주요국이 산업정책을 통해 핵심 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한국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 한국 산업의 근간이지만 반도체특별법은 계속해서 공전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산업에 필수적인 전력 확보를 위한 전력망특별법도 마찬가지다. 유럽 중상주의 시대를 되돌아보면 강하고 현명한 지도자가 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6~17세기 초 스페인의 황금기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한 펠리페 2세(1556~1598)의 리더십에서 나왔다. 프랑스는 17세기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1643~1715) 시절,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무역을 확장한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시절 최전성기를 누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적어도 잡식동물이 돼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 한국엔 지금으로선 그런 논의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우리에겐 이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리더가 먼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