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갑 동원F&B 정읍공장 책임수의사는 지난달 30일 “소비자가 안심하고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65개 농가 6200여 마리 소의 건강 상태를 상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F&B 제공
강현갑 동원F&B 정읍공장 책임수의사는 지난달 30일 “소비자가 안심하고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65개 농가 6200여 마리 소의 건강 상태를 상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F&B 제공
수의사는 요즘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한 까닭에 인기 직종으로 꼽힌다. 대도시 주택가에서 개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동원그룹 식품 계열사인 동원F&B 소속 강현갑 수의사 얘기다.

지난달 30일 만난 강 수의사는 동원F&B 전북 정읍공장에서 일한다. 정읍공장은 낙농가에서 원유를 받아 동원의 유제품 브랜드 덴마크우유를 생산하는 곳이다. 국내 우유 사업장은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수의사를 의무적으로 두게 돼 있다.

그는 1991년 전북대 수의대를 졸업하고 전북도청 소속 수의사로 3년간 일했다. 그도 고향에서 동물병원을 개업하려고 생각했다. 우연히 외국계 기업이던 덴마크우유(이후 동원F&B가 인수) 공장에 취업했다. “일하다 보니 어느덧 30여 년이 됐다”는 강 수의사의 일상을 따라가 보니 업무가 꽤 다양했다.

정읍공장에 젖소 원유를 대는 농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일상이 시작된다. 그가 관리하는 소는 6200여 마리. 덴마크우유에 원유를 납품하는 65개 농가를 매주 돌며 건강 상태를 빠짐없이 체크한다. 유량은 잘 나오는지, 전염병 징후는 없는지, 먹이는 잘 먹는지 등을 살핀다. 전북 각지에 흩어진 농가를 도느라 매주 300㎞ 정도를 운전한다고 한다.

공장 책임수의사는 우유 제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농가에서 시작된 원유가 공장에서 포장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감독하기 때문이다. 강 수의사는 “매주 농가를 돌며 농장주들과 소통하느라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정도”라며 “젖소들을 회진하느라 밥때를 놓친 수의사에게 점심 한 끼 겸상을 권하는 농장주들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우유 생산은 반복의 연속이다.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착유하고 원유를 검사해 포장에 이른다. 날마다 원유를 생산하는 젖소들을 살펴야 한다. 그는 “변화가 더딘 산업처럼 보여도 나름 역동성이 있다”며 “소 한 마리의 사육 환경은 8~10㎡ 정도인데 동물복지를 적용하면 16~20㎡ 면적을 내줘야 한다. 손해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이라고 했다. 5~6년인 젖소의 수명이 8년 이상으로 대폭 늘어나 마리당 원유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체된 우유 소비를 늘리기 위한 품질 개선도 수의사의 몫이다. 강 수의사는 우유 소화가 힘든 유당불내증 환자가 많은 한국인을 위해 A2 우유를 도입, 지난해 10월부터 생산하고 있다. 동원F&B가 A2우유 생산에 나선 것은 연세유업 서울우유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농장 경영부터 신제품 개발까지 돕는 종합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어 수의사로서는 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수의사는 올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자연스레 ‘젊은 인재’ 수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낙농가에도, 이를 도울 수의사 인력도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도시 생활에 지쳐 부모님 농장으로 귀향해 영농 2세를 꿈꾸는 30대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붙잡아두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사기업에 소속돼 일하지만 구제역, 럼피스킨 같은 가축 전염병이 확산하면 이를 저지하는 공적인 책무도 수행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젊은 수의사들이 도전해 보람을 느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정읍=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