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강국 한국이 10년 뒤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내놓은 답은 ‘공학·과학 인재 육성’이다. 서용석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장은 “첨단 제조업은 돈과 장비가 아니라 인력, 즉 엔지니어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며 “엔지니어가 떠나는 나라에서 제조업이 성공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 첨단 제조업계 전반에서 우수 엔지니어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다. 한국 간판 제조업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에이스들이 더 나은 보상과 풍요로운 삶을 찾아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핵심 엔지니어 특별 보상 시스템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일정 기간 매도를 금지한 주식 보상) 등을 활성화해 급여나 처우 때문에 핵심 인재를 외국 기업에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규 커니 부사장은 “최근 미국 테크 기업은 S급 인재에 RSU 등을 포함해 연 10억원 이상의 기대 소득을 제시하지만 한국은 절반 이하에 그친다”며 “국내는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제한적이어서 소수 S급 인재가 개발을 주도해도 이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전략 산업에서만이라도 인센티브를 강화한 급여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4년 전부터 ‘저녁이 있는 삶’을 얘기하는 엔지니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쟁국 대만은 첨단 산업에 최적화한 고용 제도를 갖췄다. TSMC는 2년 연속 평가가 부진하면 직원을 해고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주 52시간 제도 같은 유례없는 규제도 첨단 제조업 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에선 훌륭한 인재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9·9·6’ 체제를 가동 중이고 대만은 R&D 엔지니어들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며 “주 52시간 때문에 발목이 잡힌 우리 기업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창업에 적극 나서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고취해 제2의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구인회가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색안경’을 없애는 것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