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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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라고 짚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에서 연 시무식에서 "정치 갈등 심화가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은 총재가 정치적 문제에 대해 강하게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총재는 이런 지적과 관련해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 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다"며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최 권한대행 체제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선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관계가 갈수록 심화돼 손발을 묶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고 우려했다. 물가는 안정됐지만 경기 하방 우려와 외환시장 불안, 가계부채 문제 등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수출은 작년 금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한 가운데,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지난 10년간 신산업은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매출 상위 15대 기업을 비교했다. 이 총재는 "미국은 7개 기업이 신규로 진입한 반면, 우리는 2개만 바뀌었고, 그중 신산업은 한곳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으로 강조한 '창조적 파괴'는 창조만큼이나 파괴에 방점이 찍혀있다"며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기업의 퇴출이 수반돼야 혁신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이같은 '파괴'를 회피했다는 게 이 총재의 지적이다.

다만 경기 하방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가계부채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당장의 경기둔화 고통을 줄이고자 미래에 다가올 위험을 외면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면 안된다"며 "거시건전성 정책 기조는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비부동산이나, 비수도권 부동산 대출에 대한 미시적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은이 제시한 1.9%의 성장률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이 총재는 "성장률의 하방 위험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26개국 성장률 전망 평균은 1.8% 정도"라며 "지금 상황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와 같은 상황으로 보는 것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올해 사자성어로 손자병법에 나온 이환위리(以患爲利)를 제시했다.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위기는 곧 기회"라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야할 것부터 차분하게 실천하면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