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에 샤넬 광고가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에 샤넬 광고가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명품 마니아인 윤모 씨(36)는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국내 백화점 세 곳을 돌며 '오픈런'을 했다. 샤넬에서 지난날 중순부터 이월 시즌 품목에 대해 '마크다운(가격 할인)' 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인 행사를 시작하면서 샤넬 매장에선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도 3~4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 인상 여파로 샤넬 잡화의 인기가 다소 시들해지면서 최근까지 매장 웨이팅이 거의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 씨는 “마음에 드는 품목을 고르려 여러 매장을 돌았는데, 가는 곳마다 점원들이 역대급으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2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지난달 5일부터 VIP 고객을 대상으로, 11일부터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할인을 해주고 있다. 인기 제품인 가방은 제외되지만, 신발·의류·액세서리 등을 40~50%가량 할인 판매한다. 행사 기간은 제품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다. 일반 고객 대상으로 마크다운을 시작한 11일엔 각 샤넬 매장엔 이른 오전 시간부터 수십~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1400만원 가까이하는 넘는 실크 롱 원피스 제품은 820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단추를 열고 입으면 재킷으로, 닫으면 원피스로 활용할 수 있는 의류 제품은 원래 가격이 700만원이 넘지만 427만원대까지 가격을 내려 팔았다. 안감이 양털로 된 390만원짜리 샌들은 40% 가까이 할인한 245만원에 판매됐다.

이런 샤넬의 마크다운 행사는 매년 두 차례 정도 진행된다. VIP 대상으로 먼저 행사를 진행한 다음 남은 제품이 있으면 일반 고객에게 파는 식이다. 매년 할인에 들어갈 때마다 큰 인기를 끌지만, 올해는 유독 많은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2~3일 만에 상당수 인기 제품이 소진됐을 정도다. 최근 몇 년 새 인상을 한 해에 3~5차례씩 인상을 반복하면서 제품 가격 자체가 워낙 비싸졌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샤넬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행사는 시작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할인 대상 품목이 예전보다 많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일찌감치 고객들이 매장을 찾았다. SNS나 명품 관련 커뮤니티 등에는 “매장이 사람들로 미어터져 제대로 물건을 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오후에 방문했다가 대기 번호도 못 받고 돌아갔다” 등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쇼윈도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다만 정가가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제품이 많아 할인가 자체도 고가인 경우가 대다수다. 샤넬은 코로나19 이후 명품 호황기에 들어서면서 가격을 100~200%가량 올렸다. 대표적으로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엄은 2017년 598만원에서 지난해 1557만 원으로 7년 만에 2.6배 이상 비싸졌다.

매년 마크다운 행사를 찾는 샤넬 VIP 고객 박모 씨(37)는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할인 행사를 가면 수십만원대 제품을 ‘득템’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 메리트가 있었는데 최근엔 가격이 비싸져 할인해도 300~400만원은 훌쩍 넘는다”며 “그나마 저렴하다는 신발 제품도 40% 할인을 하고서도 100만원 이하로 주고는 살 물건이 거의 없었다. 올해 옷 두 점에 신발 두 개 구입하니 할인가만 2000만원이 넘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이번 샤넬 마크다운 쇼핑 행렬을 명품 수요가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명품 가격의 잇따른 인상에 판매가 잠시 주춤하지만 잠재 수요는 살아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 열기가 사그라들었다고는 하나 정가보다 싸게 판다고 하니 오픈런이 부활한 것만 봐도 명품 수요 자체는 아직 적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