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生을 생각하다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죽는다. 너도, 나도, 모두가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작동하는 이 잔인한 명제를 우리는 철부지처럼 망각하며 살아간다. 살면서 죽어간다는 것을, 죽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을 곁에 두고, 어김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왜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을 생각하는가. 왜 이리도 어리석은가. 단언컨대 모든 죽음은 낯설다. 살아남은 자들에겐-예측 여부와 상관없이-고요한 바다에 몰려오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다. 언젠가 끝날 것임을 애써 부정하다 ‘그것’을 마주한 이들은 말한다. ‘떠난 자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몰랐던 것들뿐’이라고.

죽음은 필연적으로 결코 나의 일이 될 수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일’이 된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엔 누구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가장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찰나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뿐이다. 진심을 다해 슬퍼하고, 예의를 갖춰 떠난 이들을 잘 보내는 일뿐이다. 인간의 무력한 나날을 버틸 수 있는 힘, 생애 끝자락에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오직 그 감정을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면, 도대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오랜 세월 반복해 던진 질문이다. 비애와 고통 앞에 인류를 치유하고 구원한 음악과 문학, 예술의 편린을 다시 찾아본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또 바보처럼 잊고 살아가겠지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파도를 넘어서야 하는 상실의 숙명 앞에 정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행복한 삶은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