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환율 급등이 또 다른 환율 급등 부를까
러화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탄핵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겹치면서 환율이 한때 달러당 1480원을 넘어섰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곤 가장 높은 수치다. 외환위기 때는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갔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기에 이번에도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작지 않다.

한국 경제는 두 번 위기를 겪으며 환율 안정을 위한 여러 가지 방파제를 쌓아왔다. 첫째는 변동환율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실질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투기 세력에 엄청난 먹잇감을 제공했다. 하지만 현재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그런 기회는 적은 편이다. 환율이 달러당 1000원에서 무리하게 유지되다가 급등하는 경우에 비해 이미 변동이 가해진 달러당 1400원대에서 오르면 차익이 작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단기외채 감소다. 두 번의 경제위기 때마다 갑작스러운 외화 유출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가한 것은 은행의 단기차입이다. 은행은 자금을 단기로 조달하고 장기로 운용해 수익을 내는데 국내 자금이 부족하면 해외에서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은행은 장단기 만기 불일치뿐 아니라 통화 불일치를 동시에 겪는다. 이때 단기 외화차입에 대한 만기 연장이 거부되면 환율뿐 아니라 은행 건전성 자체에도 타격이 생겨 금융위기가 함께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2010년 단기차입에 대해 도입한 거시건전성 부담금과 선물환포지션 한도 규제에 의해 상당 부분 완화됐다.

셋째, 한국은 2014년 이후 대외 순채권국으로 전환됐다. 외화보유액이 상당한 데다 이를 제외한 민간 부문만 고려해도 2018년부터는 대외금융자산이 대외금융부채를 초과하는 진정한 대외순채권국가가 됐다. 이는 환율 변동을 줄이는 안전 장치 역할을 한다. 환율이 급등하면 외화 표시 자산을 매각해 막대한 이득을 올릴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달러 유입이 생겨 환율 안정에 기여한다.

넷째, 원화 채권 시장의 발달이다. 일찍이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신흥시장국이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는 것이 신흥시장국이 주기적으로 외환위기를 겪는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외환으로 차입하는 경우 환율이 급등하면 이는 고스란히 채무 증가로 이어진다. 즉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일 때 100만달러의 채무는 10억원이지만 환율이 달러당 2000원이 되면 순식간에 채무는 2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채무가 급증하면 건실한 기업도 파산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외국 자본을 자국 화폐로 차입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을 아이컨그린 교수는 ‘원죄’라고 불렀다.

다행히 한국은 꾸준히 국채시장을 키워가며 원화로 차입할 수 있는 여건을 확대하면서 원죄를 극복해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채 발행 잔액은 1000조원을 넘어섰고 이 중 외국인 비중은 2006년 1.6%에서 2023년 20% 정도로 높아졌다.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에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겹쳐 비상계엄 전 최근 6개월 동안 외국인은 50조원 이상 국채를 순매수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외국인들이 20여 일 동안 17조원어치 넘게 순매도하며 환율 불안의 최대 요인으로 부상했다.

원화 국채시장이 결정적 순간에 최대 환율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두고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원죄의 재현’(original sin redux)이라고 불렀다. 외국인이 원화 채권 시장에 투자하는 경우 환율 급등의 손해가 고스란히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전되고 이는 외국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를 압박해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환율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여러 방파제를 쌓아왔으며 덕분에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문제는 ‘원죄의 재현’으로 환율 급등이 외국인의 추가적인 원화 자산 매각을 초래해 또 다른 환율 급등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권과 경제당국자는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경제주체들도 추가 환율 변동에 대비해 자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