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작년 12월 7일 열린 시상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작년 12월 7일 열린 시상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미·중 갈등과 이로 인한 우방국과의 교역 강화(프렌드쇼어링)는 분명 한국 기업에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생산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한국의 노동비용은 중국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섬유와 의류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며 “한국은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 출범 후 공약대로 대중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 한국 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한숨 돌릴 시간을 버는 건 사실이지만 생산비가 높은 한국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 혁신 장려 제도 필요

아제모을루 교수는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2년 저술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국과 북한의 체제를 대조하며 양국의 경제 성장 격차를 설명했다. 사유 재산과 공정한 경쟁을 인정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 남한과 소수 집단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지닌 북한의 정치·경제적 제도 차이가 극명한 번영의 차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국은 민주주의와 포용적인 시장을 통해 빠르게 경제 성장에 성공한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강력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한국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규제, 경쟁과 효율성 촉진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며 “급속한 고령화와 매우 낮은 출산율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어어 “기업 부문 혁신과 효율성을 강화하고 노동인구의 교육과 혁신성을 장려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한 시기”라며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한국의 (정치적인) 제도가 근본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최근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사회 전반이 불안정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도 내놨다. 트럼프 당선인이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제모을루 교수는 “낮은 수준의 규제와 정부 개입이 섞여 있는 형태를 지향한다”며 “(민주주의보다는) 개인 통치와 결합된 형태의 혼합경제(mixed economy) 체제”라고 규정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은 본질적으로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것을 제로섬 관점에서 바라보며 미국에 유리하게 세계화의 규칙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아울러 정부가 선호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고 산업정책에도 우호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의 글로벌 기업과 제도가 자신과 가족 이익에 일치되기를 바라며 민주주의 제도를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하는 실리콘밸리 인물들의 정치 개입도 차기 트럼프 정부의 특징으로 꼽았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실리콘밸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업들의 본거지이며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언론과 모든 정보를 지배한다”며 “그동안 이들은 정치에 비공개로, 제한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진단했다. 또한 “현재 트럼프 정부와 관계된 실리콘밸리 인물들이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고 모든 이슈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과거에는 실리콘밸리가 문화적인 이슈(다양성 선호), 이민자 기반 등의 이유로 민주당과 더 가까웠다면 지금은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로 이동했다”며 “이들은 앞으로도 공화당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극화 해결 안 되면 민주주의도 위협

아제모을루 교수의 최근 관심사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는 AI가 자동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이 결과로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AI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익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그런 방향으로 AI를 이끌어갈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체제(민주주의 권위주의 등)와 경제체제(시장경제 사회주의 등) 간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아제모을루 교수는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와 양극화가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그는 “세계화가 평범한 미국인에게 ‘윈윈’일 것처럼 포장됐지만 실제론 아니었다”며 “트럼프 당선인의 판단 중에 틀린 것이 많지만 완전히 틀린 게 아닌 것은 바로 이 대목”이라고 했다. 이어 “세계화 덕분에 미국인은 값싼 물건을 많이 살 수 있게 됐지만 일자리를 많이 파괴했다”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 정부는 그동안 값싼 중국산 수입품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다시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근로자의 임금은 거의 늘지 않았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최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미국 노동력의 약 절반이, 다른 절반의 소득이 급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팬데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겹치며 도시 노동자의 가정도 큰 타격을 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 근간에는 ‘세계화에 속았다’는 대중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아제모을루 교수의 진단이다.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위협받는다는 것이 그의 기본 인식이다.

다만 아제모을루 교수는 세계화 자체가 되돌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세계화를 추구하되 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짤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안보 측면에서 중국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만들고 무역협정에서 미국 근로자에 대한 영향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구상을 소개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구상은 트럼프 당선인보다 잘 구성된 전략”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