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헌법학자인 카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도덕이 선악의 구분이며 미학이 미추(美醜)의 대립이듯 정치의 본질은 피아식별이라는 것이다.

[천자칼럼]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한국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구조여서 내 이익을 침해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당리당략 앞에서 상대와의 대화와 협상은 뒷전이기 일쑤다. 정치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문제해결 과정과 주체가 엉뚱한 곳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선 주로 사법부가 그 악역을 맡는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나오는 배경이다.

대부분 헌법재판소가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다.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법무장관, 감사원장 등 총 10건의 탄핵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1988년 이후 2023년까지 접수한 탄핵 사건(7건)보다 많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위헌법률심판과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다른 미제 사건도 1354건에 달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신임 재판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제 취임한 조한창 헌재 재판관은 “정치적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다수의 문제가 합의되지 못한 채 사건화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으로 어려운 일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법의 정치화’도 못지 않다. 판사들이 사법적 판단에 자신의 정치 성향을 투영하는 경향이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늑장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1심 판결까지 4년 가까이 걸렸다. 유죄판결난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이 임기를 다 채운 뒤였다. ‘조국 사건’ 역시 1심에만 3년 넘게 소요됐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두고도 사법의 정치화 논란이 뜨겁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영장전담판사가 형사소송법의 예외를 피해가는 무리한 영장을 발부해서다. 동전의 양면같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가 제대로 기능해야 바로 잡힐 수 있다. “타협을 원하지 않는 이는 민주주의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헬무드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발언이 우리 정치에 꼭 필요한 말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