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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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美 쌍둥이 수지 적자에…올해 환율 안정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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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美 쌍둥이 수지 적자에…올해 환율 안정될 것"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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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에 처한 한국 원화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2024년 1년간 달러지수는 7% 정도 상승했는데 원/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이보다 훨씬 높은 12.5% 정도 높아지면서, 주요 통화들 가운데 원화의 성적표가 가장 부진했다. 대외적으로 미국 중심의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강달러 환경이 유지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경기 부진과 정국 불안정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 등 내우외환에 휩싸인 원화로 요약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지속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환율의 상승의 긍정적 효과도 존재

교과서적으로 환율의 일방향적인 상승은 불가능하다. 환율이 상승하게 되면 달러 표시 수출 금액이 늘어나면서 수출 채산성이 개선되고 이는 무역수지 개선으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이 늘어난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서 고용이 증가하고 소비 개선으로 이어진다. 생산과 소비의 개선은 전반적인 경기 개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금리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높아진 금리만큼 외자 유입도 늘어나면서 환율은 다시 안정화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유리하고, 수출 중심 국가에는 경기 개선을 어느 정도 도모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가 경제학 상식 수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환율 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효과인 듯 싶다. 하지만 이런 메커니즘에서는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전제로 삼고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조건이 달려있다. “다른 조건이 모두 일정하다면(cetris paribus)”이라는 것인데, 아쉽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한가지 현상이 변할 때, 특히나 금융시장의 가격변수가 변할 때 다른 조건이 일정한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과정에서 환율 상승이 달러 표시 수출금액을 증가시킨다는 부문을 살펴보자.

국가별 산업구조, 수출 품목, 대외 수요환경에 따라 환율의 영향은 달라질 수 있어

수출 금액이라는 것은 가격(P)과 물량(Q)의 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환율이 변한다는 것은 가격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환율이 상승하면 달러로 표시되는 로컬 통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품의 가격이 동일한 대체 상품 대비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 즉 가격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환율 변동으로 상품의 가격이 변하는 정도는 가격전가율이 결정한다. 가격전가율이 높다는 것은, 기업들이 환율 변동분을 출하 가격에 높게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가격 전가율이 낮다는 것은 환율 변동분을 출하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가격이 변하게 되면 물량에 영향을 미친다.

수출품을 구입해가는 바이어 입장에서는 동일한 대체 상품 대비 저렴한 상품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물량이 늘어난다. 이때 물량이 늘어나는 정도는 가격 탄력성이 결정한다. 가격 탄력성이 크다는 것은 대체 상품이 많은 환경에서 수출품의 가격이 조금만 저렴해지더라도 물량이 많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가격탄력성이 낮다는 것은 수출품의 가격 변동에도 불구하고 물량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 상품이 많지 않고 수요 자체가 더 중요할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은 과거 2000년대 초반까지(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단순 제조업 제품을 주력 수출 상품으로 삼고 있었다. 수출 상품 자체가 대체 상품이 많고 기술보다는 가격에 의존하는 특성이 높았기 때문에, 과거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물량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전략을 택했고, 그것은 가격 전가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대체 상품이 많다는 것은 물량의 가격 탄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수출 증가와 국내 경기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학계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가격 전가율이 과거보다 낮아지는 추세에 있으며,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 하이테크 산업으로 변화되면서 가격 탄력성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올해 글로벌 교역 전망은 밝지 못해…슈퍼 달러 제어 요인을 미국에서 찾아야 할 수도

한국 주요 수출 품목 중 하나인 반도체를 생각해보면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한국 반도체가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렸던 건 동일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다른 국가들 대비 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최근 반도체 수출이 둔화하는 게 한국 반도체가 비싸서인 것도 아니다. 이처럼 환율 상승이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과거의 공식도 이제는 적용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점이 원화의 디스카운트와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특히 2025년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글로벌 교역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 미국 무역 정책의 칼끝이 중국을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교역량 위축과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달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글로벌 주요 국가들 가운데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컨센서스가 상향 조정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통상적으로 미국의 경제 성장은 소비 증가와 수입 증가가 동반되기 때문에, 미국 경기의 호황 국면에서는 무역 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트럼프 정책이 추진하는 감세 정책으로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도 매우 유력해 보인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쌍둥이 수지(재정 수지+경상 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달러지수가 조정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2025년에도 미국의 강한 성장과 트럼프 정책이 미국의 쌍둥이 수지 적자를 확대한다면, 강달러가 슈퍼 달러로 도약하는 것을 제재할 수 있는 요인은 결국 미국에서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원/달러 환율 안정에 필요한 최우선적인 과제는 국내 펀더멘탈 회복과 정치 안정이 급선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본 견해는 소속기관의 공식 견해가 아닌 개인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