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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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상장된 해외주식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규모와 비중이 처음으로 국내주식 ETF를 추월했다. 국내 상장된 해외주식 투자 ETF 순자산이 지난해 32조원가량 급증한 반면 국내주식에 투자하는 ETF 순자산이 약 2조원 줄어든 결과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ETF의 순자산은 55조1960억원이다. 전년(2023년) 말 순자산인 23조5794억원의 두 배를 훌쩍 웃도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른바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투자자)의 뭉칫돈이 몰리면서 국내 전체 ETF 중 해외주식형의 존재감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말 해외주식형 ETF의 순자산 비중은 31.8%로 전년(19.48%) 대비 크게 늘었다. 반면 국내 순자산은 2023년 44조1714억원에서 지난해 42조312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절대적 금액의 변동은 작아보이지만 비중은 크게 줄었다. 국내주식형 ETF의 비중은 지난해 말 24.38%로, 1년 사이 12.11%포인트나 급감했다.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 규모도, 비중도 국내주식형을 추월한 셈이다. 해외주식형 ETF 순자산이 한국주식형을 넘어선 것은 ETF 시장이 개설된 이후 연간 기준으로 2024년이 처음이다.

한국 증시가 주요국 증시 중 수익률 최하위를 기록한 가운데 투자자들이 이른바 '국장 탈출'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미국 현지시간) 기준 2024년 한 해 동안 아시아태평양주가지수 87개의 수익률을 집계한 결과 코스피지수의 성적은 76위에 그쳤다. '꼴찌' 코스닥지수는 21%(집계 당시 기준) 넘게 급락했다. 반도체의 경쟁력 약화 우려와 주주가치 훼손 사례 빈발, 계엄·탄핵 정국 등 악재가 잇따른 결과다.

대신 한국 투자자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부양책을 기대하는 '트럼프 트레이드'에 힘입어 주가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서다. 물론 미국 주식이 내년에도 날개를 달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의견이 분분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이 변수들을 덜어내지 못하는 한 당분간 미 증시로의 '쏠림' 현상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한 증권사 ETF 전담 애널리스트는 "ETF 시장은 날로 급증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해외주식에 돈이 몰린 것은 씁쓸한 현상"이라며 "국내 증시가 부진했던 만큼 자연스런 '머니 무브'라고 보여지며,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한 당분간은 분위기 전환은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한 자산운용사 ETF 담당 부장은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한국 등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에 투자할 때 고려하는 두 가지 요소가 '환율'과 '정치적 안정성'인데 한국은 이 기준에 빗대 보면 최악 수준"이라며 "이쯤되면 '국부 유출' 걱정이 단순 기우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요가 있어야 상품을 만든다"며 "우리도 올해 새 상품으로 해외 주식형과 국내 채권형 ETF를 위주로 로드맵을 구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