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마약과 폭력 속 꽃 핀 '음악의 힘'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에 자리 잡은 할렘은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악명 높은 곳이다. 할렘 북쪽으로 흐르는 강 건너에는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크스가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이 산다. 1960년대에는 빈곤과 높은 범죄율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힙합 음악이 탄생했고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다.

비올리스트 킴 카시카시안은 죄르지 쿠르탁과 죄르지 리게티의 작품이 담긴 솔로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몇 년 전 그와 브롱크스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으로 함께 연주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장내 정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프리카계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작은 손에 들고 있던 프로그램 책자를 수줍게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다. 오늘이 생애 처음으로 본 클래식 음악 콘서트라고 말하던 소녀의 상기된 눈빛이 지갑 속 가족사진처럼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필라델피아 도심에 있는 템플대 인근의 노스센트럴은 미국에서도 총기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마치 생명이 다해버린 듯 많은 집이 비어 있고, 현재 사는 대부분 사람은 극빈층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경찰의 주요 업무는 살인, 마약, 강도 사건과 같은 중범죄와 관련돼 있다. 노스센트럴에서 아이들은 마약과 강력 범죄 속에서 살아간다.

위험한 그 동네에 20년 동안 사는 지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미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왜 굳이 그런 위험한 곳에 사느냐’는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일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험천만한 일상을 살 것 같지만,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의 법정대리인이 돼주며, 동네 친구들의 장례를 돕는 일에 나선다. 여름에는 이웃 교회와 함께 거리에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름 캠프를 진행한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단골 관객이자 실내악 공연 마니아다. 임윤찬의 연주를 보기 위해 500㎞ 북쪽에 떨어진 보스턴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목사로서 노스센트럴을 터전으로 삼은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향유하며 일상의 괴리를 채워 나간다.

이 목사의 제안으로 2017년부터 연말마다 노스센트럴을 찾고 있다. 지난 주말 테이블과 의자가 가득 찬 비좁은 농구 코트에 모인 지역 주민 200여 명을 초대한 행사에서 17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앙상블이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장내는 어수선했고 몇몇 아이는 여전히 신나게 뛰어다녔다. 공연을 할 만한 환경도 아니고 클래식 음악 경험이 전무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는 많은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순서를 마친 뒤 이 목사는 주민들이 작년에 비해 귀 기울여 음악을 듣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며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브롱크스에서 만난 소녀처럼, 또래와 달리기를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 아이가 있었을까.

잿밥에만 관심 있을 것 같던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는 연주가 끝나자 상기된 얼굴을 하고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가는 나를 붙들고 말했다. “정말 좋았고 내년에 또 올게요(It was REALLY good! Come back next year)!!” 음악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때때로 힘겨운 현실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