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동네 체육센터의 1초컷 신청 마감
운동하라는 말을 다들 쉽게 하지만 막상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 체육센터에 들어가는 것부터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집 근처에 구청이 출연한 문화체육센터가 있다. 이곳은 매월 25일이면 신규 등록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온라인 신청은 ‘1초컷’으로 마감된다. 현장 접수 대기줄은 새벽 2~3시부터 생긴다. 좋은 체육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청을 쉽게 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이 센터가 내놓은 처방은 ‘이용 제한’이었다. 우선 구민 이외 주민은 후순위로 밀어내 사실상 구민만 신청을 받아줬다. 그럼에도 민원이 끊이지 않자 이번엔 1년 이후 재등록을 막았다. 오랜 기간 센터를 이용한 ‘고인물’을 밀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에 더해 올해부턴 일부 수업에 한해 1인당 두 개 이상 강좌를 수강하지 못하게 했다. 월·수·금요일 수영 프로그램을 들으면 화·목요일 프로그램은 수강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토요칼럼] 동네 체육센터의 1초컷 신청 마감
물론 이런 처방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운동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운동할 수 있는 곳은 부족하니 시설을 더 늘리지 않고서는 방도가 없다. 하지만 체육센터 설립은 먼일이고 민원은 눈앞의 일이다. 일을 처리하는 사람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근본 해결책이 향후 계획에도 없다는 점이다. 연말에 보도블록을 까는 예산은 있어도, 민원이 빗발치는 체육센터 확장 예산은 확보돼 있지 않다. 이는 비단 우리 동네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세금과 예산을 체육센터에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거나, 예산을 담당하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관심이 부족한 게 주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체육센터를 확충하는 게 사소하거나 뒷전으로 밀릴 일이 아니다. 국민 수요가 많을 뿐 아니라 사회 난제와도 같은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건강보험료로 한 해 약 100조원을 걷어서 쓴다. 지금까진 대체로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았다. 하지만 조만간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저출생·고령화로 돈을 낼 사람은 줄고 보험 혜택을 받을 사람은 크게 늘고 있어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돈을 더 걷거나 나가는 돈을 줄이는 것이다. 지금도 너무 많이 낸다고 아우성인 국민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긴 어려울 테니, 덜 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다. 체육센터 확대는 건강보험료를 덜 쓰는 데 힘을 실어준다. 체육센터를 동네마다 더 세워 보다 많은 사람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국가 전체의 의료비 지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 건강 증진에 운동이 큰 역할을 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2013~2017년 5년간 ‘국민체력100’ 참여자를 추적 관찰할 결과 이 프로그램 참가자는 비참가자보다 연간 40만원가량 의료비를 덜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체력100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대국민 체육 복지 서비스다. 단순 계산으로 100만 명이 참여한다면 연간 약 4000억원의 의료비 감소 효과가 있다. 정부가 예측한 내년 건강보험 수지 적자 규모 3072억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노인은 주 1회 이상 30분간 걷기만 해도 의료비 지출을 연 12만5000원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금만 운동해도 효과가 커서 운동에 따른 ‘가성비’는 노인이 젊은 사람보다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 노인에게 병원을 덜 가라고 눈치를 주는 대신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사회적으로 이득이란 얘기다. 실제 동네 체육센터에서 접해본 수많은 노인은 ‘건강미’를 뽐내며 집 앞에서 운동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해했다. 한겨울에도 민소매 차림으로 헬스하는 등 이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노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노인이 많아질수록 노화로 인한 질병과 장애 시간이 단축되고 의료비 감소로 이어진다는 보고가 최근 의학계에 줄을 잇는다. 여기에 더해 운동은 노년의 자아 만족감을 높이고 사람 간 교류를 활성화해 고독감을 줄여주는 등 심리적 측면에서도 효과가 크다.

요즘은 한겨울인데도 공원만 가면 무리 지어 뛰는 사람 천지다. 이들 때문에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뛰는 사람이 많을수록, 운동하는 사람이 늘수록 사회에는 훨씬 득이 된다. 새해에 운동을 다짐한 사람이면 누구든 집 근처에서 손쉽게 운동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