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 규모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90%까지 늘리겠다. 싱가포르를 따라잡고 세계 1위 ‘경제운동장’을 확보한 나라로 올라서겠다.”

지난해 8월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발표한 ‘신통상로드맵’의 주요 내용이다. 5일 현재 한국은 23개 국가 및 지역과 FTA를 체결하고 있다. 체결국의 GDP 합계는 전 세계의 85% 수준에 달한다.

한국이 의미 있는 교역관계를 맺은 어지간한 나라와는 모두 FTA를 체결하다 보니 ‘체결국을 더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일각에선 나온다. “FTA를 체결함으로써 얻는 이득으로 협상단 출장비도 못 뽑는 나라들까지 협상 대상”이라는 농담 섞인 평가도 있다. 자유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3대 경제권을 중심으로 보호주의가 거세져 FTA 역할 자체를 의문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는 통상의 틀과 범위가 바뀌더라도 FTA의 중요성이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유명무실해지는 때일수록 양자 무역협정인 FTA야말로 가장 확실한 통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질서가 급변하는 지금이 FTA를 최대한 다층적으로 다져둠으로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산업부 관계자는 “FTA마다 개방 범위와 양허 수준이 다르다”며 “FTA를 통해 더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짜두면 우리 기업이 얻어낼 부분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FTA 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다국적 기업이라면 다층적인 원산지 규정을 활용해 공급망 내 수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FTA는 다자무역 체제와 달리 관리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협정이 아닌 것도 강점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체결해 둔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FTA는 진화하는 다른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발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은 FTA를 맺은 싱가포르와 1호 디지털동반자협정(DPA)을 체결했다. DPA는 국가 간 디지털 무역과 데이터 이동을 촉진하고, 기술과 규제 협력을 강화하는 국제 협정이다. 데이터 보호, 전자상거래,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경제 전반에 걸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통상 협정의 틀이 전통적인 교역 중심에서 기술과 서비스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산업부 관계자는 “디지털 통상 규범 강화와 환경, 노동 등 비경제적 요소를 반영한 지속 가능한 통상 등도 새로운 통상질서에 대응하는 접근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