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과 반대로 가는 HMM, 주요 해운사 PBR '꼴찌'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전세계 주요 해운사 가운데 주가가 가장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실질적인 대주주인데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를 위해 정부가 공을 들이는 '밸류업 정책'과 반대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6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3일 종가 기준 현대상선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7배로 세계 10대 해운사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 주주 입장에서는 HMM을 상장폐지해서 자산을 나눠갖는 편이 이익이란 뜻이기도 하다.
‘밸류업’과 반대로 가는 HMM, 주요 해운사 PBR '꼴찌'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독일 하팍로이드(1.51배)와 대만 에버그린(0.85배)의 PBR은 HMM보다 2~3배 높았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만 0.49배로 HMM보다 낮았다. 하지만 글로벌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복합 물류 기업인 머스크는 다른 사업부 부진 탓에 PBR이 낮을 뿐, 컨테이너 사업부만 놓고 보면 HMM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받는 경쟁사가 우리나라에 앞서 밸류업 정책을 시행한 일본이다. 2022년 상반기만해도 니혼유센 미쓰이OSK, 가와사키기센 등 일본 3대 해운사 PBR은 0.4배 안팎으로 HMM보다 낮았다. 최근 이들의 PBR은 0.75~0.95배에 달한다. 밸류업 정책 이후 주가가 2~3배 오른 덕분이다.

HMM이 저(低)평가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반대로 주가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HMM의 주가는 9.8% 하락했다. 하반기 이후 1만6000~1만8000원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밸류업’과 반대로 가는 HMM, 주요 해운사 PBR '꼴찌'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투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기 때문이다. 해운업황 호조로 HMM의 2024년 순이익은 3조6399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순익도 1조6011억원으로 2년 연속 조(兆) 단위 이익이 기대된다.

실적이 좋은데도 주가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HMM의 행보가 밸류업과 거꾸로 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9월10일 HMM은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해 통합 물류회사로 나아가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PBR을 올리려면 분모인 자산을 줄이고 분자인 주가를 올려야 한다. HMM은 반대로 분모인 자산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분자를 올리기 위한 주주환원 정책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배당 정책이 예측불가라는 지적을 받는다. 2022년 역대 최대 규모인 10조854억원의 흑자를 냈을 때 배당성향은 5.8%였는데 순익이 9687억원으로 쪼그라든 2023년에는 배당성향이 42.7%였다.

덕분에 HMM의 대주주인 해양진흥공사와 산업은행은 1500억원대의 배당을 받아갔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순익이 급증하는 2024년은 또다시 2022년 처럼 배당성향을 줄일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밸류업’과 반대로 가는 HMM, 주요 해운사 PBR '꼴찌'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역사적인 실적이 이어지면서 작년 3분기말 현재 HMM의 유동자산은 16조원으로 시가총액과 거의 같다. 해진공과 상급기관인 해양수산부는 부침이 심한 해운업황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금성 자산을 넉넉하게 보유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HMM의 적자가 가장 심했을 때조차 결손금은 4조9000억원이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유동자산을 16조원씩이나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대주주이고, 보유현금도 사상 최대여서 가장 앞장서 밸류업을 시행해야 할 회사가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업계가 제시하는 밸류업 해법은 자사주 매입이다. 분모(자산)를 줄이는 동시에 분자(주가)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3대 해운사가 발표한 자사주 매입규모는 3200억엔(약 3조원)에 달한다. 미쓰이OSK가 자사주를 매입한 건 20년만이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HMM은 왜 밸류업 정책을 시행하지 않느냐'는 해외투자가들의 문의가 많다"며 "내부 유보금을 활용하면 보통주로 전환되는 전환사채(CB) 전량을 사들여 PBR을 높이고, 대주주 지분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HMM의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매각이지만 산은은 매각에 적극적인 반면 해양수산부와 해진공은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 애널리스트는 "산은은 현 주가에 매각하면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달성할 수 있지만 해진공은 HMM을 빼면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반영해 HMM은 조만간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주주환원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